올 5월의 어느 날.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의 국립로봇공학센터(NREC)에서 두 명의 엔지니어가 원숭이처럼 생긴 로봇을 정밀 조정하고 있었다. 이 로봇의 이름은 ‘침프(Chimp)’. 펜타곤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의 결승전에 나갈 귀하신 몸이었다. 세계 최강의 재난대응로봇을 가리는 이번 대회에서 침프는 20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거머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NREC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침프가 연습을 하는 동안 다른 로봇들은 완전히 방치돼 있었다. 미국 최대 로봇공학프로그램을 운용하는 NREC는 평상시 부산스럽기로 유명하다. 잔디깎이, 수확기, 굴삭기, 군용 차량 등 다양한 무인기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많은 공학자들이 그 기계와 연결된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일에 열중한다. 그러나 이날은 평일 대낮임에도 적막감이 흘렀다.
NREC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한 마디로 말해 우버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우버는 실리콘밸리 성공담의 전형적 표본이다. 모바일 차량 공유서비스 앱 하나로 무려 28억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현재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더 이상 택시회사와의 경쟁에 머무르지 않고 로봇을 이용해 더 저렴한 이용 요금을 구현하는 한편 자동차 업계 전체와 대적할 궁극의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야심의 발로였다.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최고경영자(CEO)는 2014년 한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자동차에서 운전자가 사라지면 우버의 서비스 이용료는 차량을 소유하는 것보다 월등히 저렴해집니다. 결국 자동차 소유의 시대는 종말을 맞을 것입니다.”
이런 우버가 올 2월 카네기멜론대학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NREC 인근에 임시 설치한 우버첨단기술센터(UATC)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겠다고 천명했다. 당시 우버와 카네기멜론대학은 인력충원 계획에 대해 함구했는데, 우버의 전략은 NREC의 인력을 빼내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2월부터 5월까지에만 NREC의 연구자 150여명 중 40~50명이 우버로 영입됐다. 그중에는 13년간 NREC의 부소장, 5년간 소장을 역임한 베테랑 로봇공학자 토니 스텐츠 박사도 포함돼 있다.
스텐츠 박사 밑에서 일했던 무인자동차 장난감 제조사 앙키의 설립자인 보리스 소프먼은 우버의 전략이 놀랍도록 스마트했다고 평가한다. 구글이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의 전문 인력을 싹쓸이해 간 뒤 NREC는 사실상 이 분야에 일가견 있는 전문가들이 모인 유일한 곳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카네기멜론대학은 오랫동안 로봇공학의 선두주자로 군림해왔다. 기술상용화 계약을 통해 NREC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매년 2,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다. 지난 2007년 펼쳐진 DARPA의 자율주행 자동차 경진대회 ‘다르파 어번 챌린지’의 우승팀도 카네기멜론대학에서 나왔다. 워낙 일찍부터 관련연구를 시작했고, 그만큼 많은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구글 역시 무인자동차 연구 초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바로 이 같은 NREC의 막강한 로봇 사단 가운데 참모급을 포함한 핵심 인재 3분의 1이 우버맨이 된 것이다. 때문에 이런 학계의 인재 유출(?)이 로봇공학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대다수 과학적 탐구와 마찬가지로 로봇공학도 팀들 사이, 또는 프로젝트 간의 협력을 통해 발전한다. 하지만 로봇공학 분야의 펀딩 방식과 관심분야에 변화가 찾아오면서 많은 뛰어난 공학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연구의 무대를 옮겼다.
예컨대 아마존과 애플이 현재 사내에 로봇공학 연구팀을 구성하고 있는데, 연구내용 대부분이 기밀에 붙여지고 있다. 우버도 신입 직원들에게 기밀유지 협약서 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구글은 2013년 하반기 8개사의 유망 로봇공학기업을 인수한 뒤 기밀 유지를 위해 해당기업들과 타사와의 연구협력을 즉각 중단했다. 당시 구글에 인수된 일본의 신생기업 섀프트만 해도 휴머노이드 로봇 ‘S-원’으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 참가, 1차 예선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2014년초 구글의 종용으로 돌연 참가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지금껏 S-원은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실리콘밸리가 상용 로봇의 양산을 개시하기 전까지 로봇공학의 발전이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카네기멜론대학 필드로봇센터 윌리엄 휘태커 소장도 이에 동의한다.
“한 모임에서 이 분야 최고의 석학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연구 빈곤화에 대한 우려가 극에 치달아 있더군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10여년간 공들여 양성했던 인력풀이 일순간 사라져 버렸어요.”
심지어 세계적 비영리 연구기관 SRI 인터내셔널의 로봇공학 부문 책임자인 리치 마호니 박사는 현세태를 두고 민간기업들이 로봇공학 기술혁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수백 명의 극히 뛰어난 로봇공학자들이 실리콘밸리에 갇혀 공학계와 교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최근 로봇공학 분야에 많은 돈이 몰리고 있는 현상은 컴퓨팅 산업 초기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 자본을 무기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등의 신생기업들이 기술혁신을 이뤄 IBM이나 HP같은 당대 최강자의 라이벌로 성장했다. 그러나 마호니 박사는 지금의 로봇공학 분야가 그때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구글, 우버 등 기존 기업들이 실력 있는 로봇공학자를 싹쓸이함으로써 우수한 신생기업의 출현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기업들은 자신의 막강한 자원을 활용해 인재가 필요하면 영입해버립니다. 영입한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할 경우 정말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어요.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학계로부터 인재를 강탈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카네기멜론대학의 인력 유출을 실리콘밸리의 탐욕 때문이라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대학 로봇공학·자동화·센싱·인식(GRASP) 연구소의 비제이 쿠마르 소장을 포함한 많은 로봇공학자들은 오히려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학계에서 산업계로의 인력 유출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와 반대로 산업계에서 학계로 인력이 유출된다면 로봇공학 분야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와 관련 퀄컴 테크놀로지가 올초 GRASP 연구소에서 스핀오프한 신생 자율비행 무인기 전문기업 케이멜 로보틱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인수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쿠마르 소장은 터무니 없을 만큼 많은 금액에 인수가 타결됐다고 귀띔했다.
“저는 기업들의 이런 관심이 좋습니다. 저와 제자들이 구글과 우버, 퀄컴 등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것이 정말 좋아요. 기업이 로봇공학에 관심을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기초연구 투자를 늘려야 완벽한 제품 생산이 가능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는 분명코 학계에도 좋은 일이에요.”
사실 학계보다 민간분야의 로봇공학자가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수행할 수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개의 교수들은 자신의 시간 중 절반 정도를 연구의 정당성을 피력하는 서류, 즉 연구지원금 제안서의 작성에 투입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또한 다르파 어번 챌린지에서 확인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가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구글이 로봇공학자들을 고용해 도로위에서 실증실험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라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학계가 자율주행 자동차를 잉태시켰을지는 몰라도 상용화를 통해 우리의 삶을 혁신시켜 줄 주체는 분명 기업이라는 얘기다.
구글의 비밀연구소 구글X의 초대 소장으로서 무인자동차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스탠퍼드대학 인공지능연구소 세바스찬 스런 소장도 기업의 역할을 이렇게 강조했다. “연구논문 작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실제로 만들어서 상용화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그에게 우버의 NREC 인력 빼가기는 규모면에서 놀라울 뿐 걱정할만한 사안은 아니다.
“우버의 행보는 로봇공학시대가 시작됐다는 확신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적지 않은 로봇공학 업계 종사자들은 스런 소장의 의견에 공감한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기존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소규모 연구팀에게까지 벤처투자자의 자본이 흘러들고 있다. 작년 한 해 로봇공학 분야에 투자된 자금만 전년 대비 30%이상 늘어난 3억4,100만 달러에 이른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학계의 인재 유출이 로봇공학계의 발전을 저해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에 가까워 보인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NREC도 위기를 맞아 풀이 죽은 모습이 아니다. 빈자리를 채울 인재를 구하는 동시에 직책과 외부계약자를 늘리는 등 오히려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이를 보면 카네기멜론대학을 비롯해 로봇공학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대학들에게 산업계로의 우수 연구인력 유출은 로봇공학 기초연구의 성공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일 따름이라 할 수 있다. 휘태커 소장의 말처럼 기술을 평가하는 척도는 그 기술이 실생활에 쓰이면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지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BY Erik Sof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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