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6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IT기기가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시장이 생성됐다.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도 그중 하나다. 액정 보호 필름, 케이스 등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액세서리뿐 아니라 톡톡 튀는 외관을 위한 디자인 액세서리도 인기를 끌고 있다. 슈피겐코리아는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이다. 지난 2014년에는 모바일 액세서리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글로벌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 3위로 뛰어오른 슈피겐코리아의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지난 2014년 국내 증시에서는 이른바 ‘공모주(일반 투자자를 모집해 발행하는 주식) 열풍’이 불어 닥쳤다. 당시 삼성SDS, 제일모직 등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연관된 핵심 기업과 바이오·제약·헬스케어 관련 유망 기업 상당수가 국내 증시 상장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어들의 틈바구니에서 낯선 기업 하나가 주목받았다. 이름도 생소한 ‘슈피겐 코리아(이하 슈피겐)’가 그 주인공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낯선 회사가 공모 청약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슈피겐의 청약 경쟁률은 360대 1, 청약금만 무려 약 3조 6,000억 원이 몰렸다. 슈피겐이 단숨에 유명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슈피겐이 뭐하는 회사냐?’라는 궁금증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궁금증은 얼마 뒤 해소됐다. 그들이 매일 손에 쥐고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그 해답이 있었다. 액정 보호필름, 스마트폰 케이스가 슈피겐의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투자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슈피겐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는 슈피겐이 모바일 액세서리를 만드는 회사였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거였죠. 고작 3만~4만 원대의 케이스, 필름을 만드는 회사가 창업 6년 만에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 인기를 끌지 몰랐다는 일종의 어리둥절함이었죠.(웃음) 두 번째는 슈피겐이 한국 회사라는 점에 놀라더군요. 뒤에 코리아가 붙어서인지 외국 기업의 한국 법인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분명히 설명해 드렸죠. 저희 슈피겐은 국내 기업이라고요.”
슈피겐은 상장 이후 6개월 만에 370% 이상의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코스닥 돌풍의 대표적 사례로 슈피겐을 꼽기도 했다.
슈피겐의 성장세는 오히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슈피겐은 처음부터 타깃 시장을 국내가 아닌 북미 시장으로 정했다. 스마트폰 대중화가 시작된 북미 시장에서 승부를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의 트렌드를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북미 시장입니다. 주요 모바일 기기 제조사들이 가장 먼저 신제품을 선보이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성공하면 그 인지도를 기반으로 어느 시장에서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북미 시장이 모바일 액세서리의 성공을 가늠하는 일종의 바로미터가 된다고 할 수 있죠.”
슈피겐은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시장 전략 수립에 돌입했다. 미국 소비자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에 걸맞은 색상, 재질, 모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대영 슈피겐 대표가 있었다.
◆슈피겐에 날개 단 ‘영업맨’ 김대영 대표
김 대표는 영업맨 출신이다. 쌍용정보통신, 대우통신, 티맥스소프트 등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김 대표는 지난 2006년 휴대폰 액정 보호 필름 전문기업 SGP에 입사하면서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SGP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김 대표는 2009년 2월 SGP에서 분리돼 나온 법인 ‘SGP코리아’의 대표이사를 맡게 된다. 그리고 지난 2012년 SGP코리아가 미국 현지 법인인 유나이티드SGP를 인수하면서 통합법인 슈피겐코리아가 출범하게 된다. 슈피겐은 거울을 의미하는 독일어 ‘Spiegel’과 유전자를 의미라는 독일어 ‘Gen’의 합성어다. 고객의 마음을 거울로 비춰보듯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고, 고객 중심의 유전자를 갖고 활동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긴 사명이다.
김대영 대표는 슈피겐 대표가 된 후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소비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신제품 개발에 참여했다. 영업맨 출신이었지만 누구보다 모바일 액세서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한참 전부터 직접 투명 시트지를 잘라 만든 필름을 피처폰 액정화면에 붙여 사용해온 그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그저 관리만 하는 CEO가 아닌 현장형 CEO가 되길 원했다. 그것만이 슈피겐이 하루빨리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비결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대표에 오른 후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미국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미국의 한 카페에 앉아 온종일 사람들이 쓰는 휴대폰을 관찰했죠. 케이스의 색깔, 모양, 재질을 꼼꼼히 기록하면서요. 사무실에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 경쟁사의 흐름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슈피겐은 미국 시장 진출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품질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슈피겐 제품을 외면했다. 나름대로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아기자기하고 톡톡 튀는 디자인의 케이스를 선보였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김 대표가 미국행을 선택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 대표의 개인적인 노력 외에도 회사 차원의 미국 시장 분석도 진행됐다. 미국 휴대전화 대리점 하나를 인수해 방문 고객들의 취향 분석에 나섰고,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해 현지 직원을 채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슈피겐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디자인보다는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며, 플라스틱보다는 메탈 소재를 선호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후 슈피겐의 전략은 완전히 새롭게 변모한다. 색상과 모양에 집중했던 기존 전략에서 벗어나 다소 투박하더라도 튼튼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철저한 현지 시장 조사를 통해 탄생한 제품이 바로 범퍼형 분리케이스 ‘네오하이브리드’와 슈피겐의 독자 기술인 에어쿠션을 적용한 ‘슬림아머’다. 두 제품은 슈피겐이 미국 시장에 정착하는 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슈피겐은 지난 2014년 9월 출시된 아이폰6 전용 케이스로 더욱 단단한 입지를 다졌다. 아이폰6 출시 이후 슈피겐의 아이폰6 전용케이스는 미국 아마존 사이트 아이폰6용 스마트폰 케이스 베스트셀러 톱10 중 9개를 싹쓸이했다.
◆아이폰 전용 케이스로 입지 다져
매출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슈피겐의 매출은 지난 2012년 504억 원, 2013년 664억 원, 2014년 1,420억 원을 기록했다. 불과 2년 만에 3배 가까운 매출 신장을 이뤄낸 것이다. 슈피겐은 올해 약 1,66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최근 3년간 미국 내 평균 매출 증가율은 무려 199%에 달한다. 글로벌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의 약 60%를 점유한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역시 7%대까지 상승했다. 슈피겐은 이 같은 성장세를 발판 삼아 벨킨, 오토박스에 이은 글로벌 스마트폰 케이스 시장 3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창업 후 불과 3년 만에 글로벌 톱3 반열에 오른 것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미국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은 오프라인 매출이 온라인 대비 90%를 차지하고 있는데 슈피겐은 미국 시장 진출 초기부터 오프라인 중심의 전략을 세워 현재 2,000여 개 이상의 매장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이 같은 오프라인 매장 확대 전략은 슈피겐의 또 다른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슈피겐의 또 다른 성장 비결은 디자인에 대한 차별성, 그리고 프리미엄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 전략이다. 슈피겐은 현재 미국과 한국에 디자인 연구소를 마련해 시장 특성에 맞는 디자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또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프리미엄 라인업에 걸맞은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 3대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이집트 출신의 카림 라시드, 스포츠 의류 브랜드 아디다스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제러미 스콧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제품이 대표적이다.
특히 프리미엄 B2C에 집중하는 슈피겐의 전략은 기존 모바일 액세서리 제조 시장의 흐름과는 정반대 전략이다. 기존 제조사들은 삼성, 애플 등 주요 모바일 기기 제조사들과 계약을 맺고 제품을 납품하는 B2B(기업 간 거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슈피겐 측 관계자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 설명했다. “우선 프리미엄 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중국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는 사업 초기부터 머지않아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저가 전략을 펼친다면 중국 업체들에게 시장을 잠식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저희는 아예 처음부터 고가 프리미엄 제품으로 라인업을 완성했습니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었죠.”
B2C 거래에 집중한 이유는 자칫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이 스마트폰 제조사 전략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국내 대다수 모바일 액세서리 업체들은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들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특정 회사 제품에 맞는 케이스나 액세서리만을 개발해 공급하는 업체가 대다수다. 물론 장점도 있다. 꾸준히 제품이 출시되는 한 안정적으로 물량을 납품할 수 있다. 반면 해당 스마트폰이 판매 부진에 시달릴 경우, 액세서리 업체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재고 소진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제품 단가를 낮춰 보급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슈피겐 관계자는 말한다. “물론 사업 초기에는 브랜드 인지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종속되면 결코 오래가는 기업이 될 수 없다고 확신했죠.”
◆역발상 전략으로 고급 브랜드 자리매김
결과적으로 슈피겐의 전략은 통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경쟁사들이 중국발 저가 공세를 버티지 못한 채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반면 슈피겐은 프리미엄 B2C 전략의 성공 속에 견고한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슈피겐의 이 같은 역발상 전략을 다른 산업군에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이라는 해외 시장을 우선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 시장의 트렌드가 곧 글로벌 트렌드로 이어진다는 이 시장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죠. 특히 프리미엄이라는 슈피겐의 브랜드 이미지 역시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에 기반을 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쌓은 브랜드 이미지와 실적을 기반으로 자신 있게 ‘프리미엄’이라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단순히 비싼 가격만을 근거로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면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슈피겐의 지향점은 ‘불안정성을 유지하는 회사’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슈피겐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슈피겐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합니다. 새로운 에너지가 주입되면 조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겠죠. 잔잔한 파도처럼 현실에 안주할 생각은 없습니다. 새로운 시도로 항상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가 바로 저희가 꿈꾸는 미래의 슈피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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