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표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iphaGo)의 세기의 대결이 벌어졌다. 대결의 승리는 예상을 깨고 인공지능이 차지했다. 이세돌 9단은 모두 다섯 판 중 첫 세판을 내리 졌다. 실수도 없었고 방심도 하지 않고 진지하게 뒀는데도 졌다. 과연 인간은 인공지능을 넘을 수 없는가.
인공지능의 획기적인 발전은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 덕분이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학습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인간의 뉴런처럼 수십 개의 층(layer)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걸러내고 정보 사이의 의미(패턴)를 찾아낸다. 이런 과정을 무한대로 반복하며 컴퓨터는 다양한 패턴을 학습하고 판단은 정교해진다. 알파고는 이런 과정을 통해 바둑 실력을 키웠다. 아마추어 고수들의 대국에서 약 3,000만 개의 바둑판 상황을 추출해 학습했다. 100만 번의 대국을 단 4주 만에 소화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1,000년이 걸리는 일이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하루에 3만 번의 대국을 소화하면서 끊임 없이 학습하며 스스로 최선의 수를 찾는다.
인공지능 기술은 컴퓨터 하드웨어의 기능 향상과 함께 빠르게 발전했다. 인간과의 대결은 필연적이었다. 최초의 대결은 체스였다. 67년 MIT 출신 해커가 만든 체스 프로그램 ‘맥핵’은 철학자이자 아마추어 체스 선수였던 후버트 드레퓌스와 대결해 예상을 깨고 승리한다.
충격적인 대결은 30년 후인 97년 벌어진다. IBM이 개발한 ‘딥블루(Deep Blue)’가 여섯 번의 대결에서 2승 3무 1패의 성적으로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가스파로프를 꺾었다. 체스에서 컴퓨터의 수 읽기와 전략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후 인간은 체스에서 더 이상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했다.
2011년 IBM이 만든 수퍼컴퓨터 ‘왓슨(Watson)’은 미국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서 인간 챔피언 두 명과 겨뤄 승리를 거머쥐었다. ‘왓슨’은 사람이 쓰는 문장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까지 파악하며 여유롭게 승리했다.
하지만 바둑은 인공지능에겐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바둑계는 물론 인공지능 전문가들조차 앞으로 20~30년간은 프로 바둑기사를 꺾을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체스판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변화무쌍한 바둑판의 흐름은, 의외의 변수가 난무하기에 임기응변 대응이 불가능한 인공지능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제 가장 고차원적인 수 싸움인 바둑에서까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결하기에 앞서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樊麾) 2단과 다섯 판을 두어 전승을 기록했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다. IBM의 왓슨은 인간 의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해내고 있다. 미국 종양학회는 “왓슨을 활용한 암 진단 정확도가 대장암 98%, 방광암 91%, 췌장암 94%, 자궁경부암 100%로, 전문의 초기 오진 비율이 20%인 데 반해 높은 정확도를 보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 29점은 9만7,000여 달러에 판매됐다. 미국 예일대가 개발한 인공지능 ‘쿨리타’는 음계를 조합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 페이스북의 M, 애플의 시리 등 전 세계 IT 기업들은 앞다퉈 인공지능을 이용한 개인 비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일본의 후지쯔는 얼굴 형태에 따라 화장법과 화장품을 선택할 수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내놓았다.
AI는 금융산업에서도 활용된다. 인공지능 로봇이 자산을 관리해 준다는 의미의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회사들이 취급하는 자산 규모가 지난해 200억 달러에서 5년 뒤 2조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될 정도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선두주자인 유안타증권의 티트레이더2.0을 필두로 NH투자증권의 QV로보어카운트, 삼성증권의 스마트 어드바이저가 속속 선을 보였고 KB국민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업체 쿼터백과 손잡았다.
과연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탄생이 가능한가.
컴퓨터 발전 역사에서 빼놓은 수 없는 인물이 수학자 앨런 튜링(1912~54)이다. 1950년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Can Machines Think?)라는 논문에서 그는 기계가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기계도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계는 향후 30년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미래학자이자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이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은 인공지능·로봇이 견인하는 4차 산업혁명이 화두였다. 18세기 중반 증기기관의 발명이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면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발견과 대량생산 체제 구축이다. 3차는 인터넷 등 정보기술과 산업의 접목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같은 최신 기술이 제조업을 변화시켜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3D 프린팅 같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WEF는 4차 산업혁명의 어두운 면도 조명한다. WEF가 펴낸 ‘직업의 미래’ 보고서는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가면서 앞으로 5년 안에 선진국 15개국에서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18년이면 300만명 이상의 직원이 로봇 상사(Robo-boss)의 감독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대량 실업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단순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창조력과 고도의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교육과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공상과학(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1939년 ‘핑계(Runaround)’라는 소설에서 ‘로봇 3원칙’을 제시했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을 해서 안 되며,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앞서 두 가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선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를 고된 노동에서 해방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와 함께 영화 ‘터미네이터’ 속 ‘스카이넷’처럼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란 두려움과 공포가 뒤섞인다. 기술의 발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냐에 대한 지향점은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로봇윤리 등 인공지능을 둘러싼 윤리·법률·제도에 관한 사회적 토론과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병도기자 d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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