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산시성 시안에서 태어난 슝이팡은 ‘싱가포르의 MIT’로 불리는 난양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재학 중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난양기술경영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촹커(創客·창업자)의 꿈을 키운 그는 21세 때 첫 번째 회사인 소셜커머스 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는 등 사업가의 기질을 일찌감치 드러냈다. 부족한 경영 지식을 채우기 위해 2012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슝이팡은 듀크대 후쿠아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13년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챕터’를 개발·론칭하기도 했다. 스탠퍼드대가 선정한 100명의 학생 창업가에 포함된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자신이 세울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했다.
싱가포르로 돌아온 후 호시탐탐 새로운 사업 기회를 노리던 슝이팡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바로 드론이다. 홍콩 출신의 왕타오가 설립한 ‘DJI(다장촹신)’이 글로벌 상업용 드론 시장을 휩쓰는 것을 목격한 그는 드론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후화즈·양전취안과 드론 업체를 세우기로 의기투합했다. 1년여에 걸친 개발 끝에 제품력에 자신감을 얻은 슝이팡과 동료들은 2014년 5월 첫 모델인 ‘고스트’를 출시했다.
고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조종하기 쉬운 드론을 만들자’는 이항의 설립 목표가 고스란히 반영된 제품이다. 복합한 컨트롤러(조종기)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간편하게 조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미 시장에 스마트폰으로 조종할 수 있는 제품이 나와 있었지만 고스트는 어린이들도 쉽게 조종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스마트폰 조종의 한계로 지적되던 불안정한 연결 문제를 신호증폭기인 ‘G-box’를 통해 해결해 출시 1년 만에 70여개국에서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광저우의 허름한 창고 건물에서 직원 4~5명으로 출발한 이항은 2년 만에 기업가치가 100배 이상 커졌고 직원 수도 200명이 넘는다. 슝이팡의 자산가치도 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스트가 성공을 거두자 이항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투자자금이 밀려들었다. 이항은 사업 초기에 중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데모아워’에서 37만위안(약 6,500만원)의 자금을 유치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12월 1,000만달러(약 120억원), 지난해 8월 4,200만달러(약 500억원)의 투자 유치에 잇따라 성공했다. 슝이팡은 이 투자자금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어 지난해 11월 고스트의 후속작인 ‘고스트드론 2.0’을 출시한 데 이어 ‘184’를 선보였다.
슝이팡은 종종 ‘드론은 하늘을 나는 아이폰과 같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하듯 드론에 각종 앱을 탑재해 누구라도 손쉽게 조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고스트를 통해 이를 실현한 그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바로 사용하기 쉬운 드론을 만드는 단계를 넘어 인류의 삶에 실질적인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항은 지난해 6월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의 자회사인 바이두테이크어웨이와 협력해 고스트를 이용한 피자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마존이 드론을 통해 택배 서비스에 나선 것처럼 물류·응급구조·농업 등의 분야에 드론을 활용함으로써 전통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한편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겠다는 목표다. 올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선보인 184를 통해서는 대도시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홍세화 바이로봇 공동창업자 겸 전략담당 이사는 “글로벌 드론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이항은 처음부터 자율비행이라는 명확한 콘셉트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면서 “유인 드론인 184가 상용화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리고 난관도 있겠지만 먼저 제품을 내놓고 시장에서 기술을 검증받는 경영전략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