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가 몰고온 사회적 파장 속에 ‘바둑올림픽’ 제8회 응씨(應氏)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가 19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다.
지난 1988년 대만 재벌 잉창치가 창설한 응씨배는 최초의 세계기전이다. 4년에 한 번 열려 바둑올림픽으로 통하며 우승 상금 40만달러(약 4억6,000만원)는 단일 대회 최고액이다. 준우승 상금도 10만달러. 한 달여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로 바둑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커진 터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해에 열리는 바둑올림픽은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겁다.
19일 오후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은 세계 최고수 30명이 내뿜는 긴장감에 휩싸이게 된다. 개막식과 함께 28강 조 추첨이 열리기 때문이다. 전기(직전 대회) 우승·준우승자인 판팅위(중국) 9단과 박정환 9단은 본선 16강에 직행한 상태. 28명이 예선 단판을 벌여 14명이 본선에 합류한다. 중국 10명, 한국 6명, 일본 6명, 대만·미주·유럽 각 2명이 출전하는 예선은 20일에 시작되며 16강은 22일, 8강은 24일 치러진다. 준결승은 6월, 결승은 8·10월로 예정돼있다.
◇인간계 평정 노리는 이세돌=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 네 번을 졌지만 천금의 1승으로 인간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 이후 제주도 가족여행 등으로 2주간의 짧은 휴식을 취한 이 9단은 지난달 말 제17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으로 ‘인간계’ 반상에 복귀했다. 8강전 승리로 4강(27일)에 진출한 상태다.
이제는 응씨배에서 숙원을 풀 차례다. 응씨배는 이 9단에게 프로기사의 길을 걷게 한 대회다. 조훈현 9단이 초대 대회에서 우승한 뒤 김포공항에서 서울 관철동 한국기원까지 카퍼레이드하는 모습에 마음을 뺏겼다고 한다. 이 9단에게 이번 무대는 3전4기다. 세계대회 우승이 18차례인데 세 차례 출전한 응씨배는 제패하지 못했다. 알파고 대국 후 응씨배 우승을 첫 번째 목표로 밝혔던 이 9단이다.
이 9단의 친형인 이상훈 9단은 1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동생이 남다른 각오를 품고 오늘 출국했다”고 밝혔다. 이상훈 9단은 “아무래도 알파고 대국 이후 관심이 커져 성적에 대한 부담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이(33세)도 있고 응씨배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준비했다”며 “집에서 한강이 가까운데 시간 나는 대로 한강을 따라 걷는 가벼운 운동으로 컨디션 관리도 해왔다”고 전했다. 관건은 실전 감각이다. 이상훈 9단은 “대국 감각도 중요한데 알파고 대국 이후 딱 한 판을 두고 가는 거니까 우려스럽기도 하다”며 기전화 체계가 미흡한 국내 환경에 아쉬움도 나타냈다.
◇하늘 찌르는 19세 커제 누가 막을까=최근 바둑계 판도를 주도하는 중국은 자국랭킹 1위 커제 9단을 앞세워 대회 2연패를 노린다.
응씨배는 한국과 중국이 양분해왔다. 한국은 2000년까지 1~4회 대회 연속 우승에 이어 6회 대회도 접수했다. 중국은 5회와 직전 대회인 7회 대회에서 우승했다. 커제 9단은 알파고 대국 직전까지 이세돌 9단에 연전연승하는 등 파죽지세로 응씨배에 나선다. 이 9단의 설욕 여부만큼이나 박정환 9단과의 대결도 관심이다. 박 9단은 29개월 연속 국내랭킹 1위(이세돌 9단은 2위)를 지키고 있다. 박 9단은 최근 커제 9단과의 인터넷 10번기에서 5대5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상훈 9단은 “커제 9단은 응씨배가 첫 출전이기는 하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세계대회들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부담 없이 임할 것”이라며 “중국은 응씨배와 비슷한 방식의 자국리그를 일찌감치 시작해 유리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한국은 이세돌·박정환 9단과 함께 박영훈·김지석·강동윤·원성진 9단, 나현 6단으로 진용을 갖췄다.
집이 아닌 점(點)으로 승부를 가리는 응씨룰이 적용되며 덤은 8점(7집반)이다. 제한시간은 종전 3시간30분에서 3시간으로 줄었고 초읽기 대신 주어지는 벌점도 시간 초과 때 20분당 2집씩의 공제(총 2회 가능)로 변경됐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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