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그녀를 위한 만찬을 준비하기로 했다. 음식 재료들은 손에 넣었고 이제 집에만 가면 된다. 그런데…….’
직접 한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먹을 장면을 상상하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남자는 지하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좌절한다. 차가 없어진 것. 정확히 말하면 차를 어느 곳에 주차했는지를 잊어버린 것.
이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상황을 소재로 1분 남짓하게 러닝타임(RT)을 구성한 72초 드라마의 시즌 3 ‘나는 오늘 마트에 갔다’편(www.youtube.com/watch?v=sM4cNMzBuRo)이다.
‘가만 있어보자. 내가 주차를 했던 곳이….’ 남자는 시멘트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지하에서 차를 찾아보려 방황하지만 성과가 없다. 주차했던 곳에 기둥이 있었던 것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차, 자신처럼 두리번거리는 남자와 부딪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남자의 추리를 따라가면서 누구나 겪을 법한 ‘차를 찾아내 집으로 귀가하기’는 스릴 넘치는 추리 게임이자 서바이벌 게임으로 바뀐다. ‘분명히 다른 곳인데 같은 곳처럼 보이도록 설계돼 있다’ ‘음흉한 속임수가 도사리고 있는 회색 도시의 끝없는 미로’ 등 지하주차장은 낯설고 생존이 어려운 곳으로 변모한다.
남자는 과연 차를 찾았을까. 엔딩에서는 허무하게도 ‘72초 TV 올바른 주차구역 확인 캠페인’이라는 타이틀이 올라온다. 모두가 차를 세울 때는 대충 보지 말고 제대로 기억하자는 것.
허무할 법한 결말이지만 일상에서 흔하게 있을 법한 일을 소재로 스릴과 반전을 갖춘 드라마는 한 편의 ‘퓨전요리’로 탈바꿈한다. 가끔 양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나 싱거운 느낌은 함께 가야 할 밑반찬이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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