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유통 강자 자리는 몇 번의 격변기를 겪었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유통업계 리더는 백화점이었다. 멈출 줄 모르는 경제성장 가도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고급 제품을 소비하려는 수요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소비패턴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대형마트가 급성장, 2003년부터 국내 최대 유통채널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이제는 대형마트의 유통 황제 자리도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바로 온라인 혁명 때문이다.
SK플래닛은 올해부터 11번가를 앞세워 ‘커머스 올인’을 선언하며 앞으로 닥칠 온라인 유통채널 전성시대의 왕좌를 꿈꾸는 당돌한 기업이다. SK플래닛은 정보기술(IT)에 유통 혁신 전략을 접목하는 방법으로 오픈마켓부터 직접판매, 온·오프라인(O2O) 연계 서비스까지 온라인 유통 라인의 구석구석을 모두 아우르는 사실상 유일한 업체의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특히 유통업계의 미래 성패가 온라인·모바일에 달렸음을 감안해 2020년까지 오프라인 채널 없이 총 거래액 12조원을 달성, 롯데·신세계에 이은 종합유통 3위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당찬 포부를 품고 있다.
장진혁 SK플래닛 MP부문장은 “다른 업체들이 최저가 경쟁에 치중할 때 11번가는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서비스 정책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연내 획기적인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앞서가는 전략으로 올해 온라인 부문부터 1등으로 뛰어오르겠다”고 자신했다.
SK플래닛은 올 들어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커머스 올인’ 계획을 무서운 속도로 실행하고 있다. 지난 2월 국내 2위 오픈마켓인 11번가를 운영하는 자회사, ‘커머스플래닛’을 인수한 데 이어 3월에는 ‘T클라우드’, ‘T스토어’를 SK테크엑스와 원스토어로, 4월에는 ‘T맵’ 사업을 SK텔레콤으로 각각 이관하며 커머스 외 서비스를 발 빠르게 정리했다. 최근에는 재무적 투자자(FI)를 중심으로 투자안내서(IM)를 배포하는 등 1조원 이상의 투자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섰다. 확보된 실탄을 시장 점유율 확대에 적극 투하해 G마켓, 쿠팡 등 오픈마켓·소셜커머스 최강자를 단숨에 따라 잡는다는 복안이다.
SK플래닛의 실험적 도전은 단순히 사업구조조정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중순 생활에 밀접한 600여 가지 마트 제품군을 모은 ‘11번가 직영몰’을 개설, 오픈마켓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매입한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본격화하며 영역파괴에 도전했다. 직매입을 기본으로 하는 소셜커머스 시장이 오픈마켓 이상으로 급성장하면서 대형마트 업체들까지 긴장시키자 과감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실제로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업체인 쿠팡이 2013년 매출 478억원에서 올해 3조원 매출에 도전하는 사이 대형마트 업계 3위인 롯데마트는 2012년 6조4,650억원을 정점으로 3년 연속 역신장했고, 2위인 홈플러스 매출 역시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뒷걸음질쳤다. 11번가는 4월초 경기 이천에 ‘합포장 서비스’ 등 한달 40만 건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지상 4층, 총 면적 3만㎡(9,000여 평) 규모의 직매입 전용 물류센터를 오픈한 데 이어 최근에는 직매입 제품 구매 고객을 위한 QC(품질제어)팀까지 신설하는 등 시장의 강력한 도전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O2O 서비스와 모바일 강화도 SK플래닛의 집중 투자 대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11번가는 지난 2월 생활형 O2O 포털서비스 ‘생활플러스’를 업계 최초로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이달 초에는 O2O 큐레이션 정기배송 서비스까지 내놓았다. 모바일11번가에서 터치 몇 번만으로 음식배달, 출장세차, 가사대행, 맞춤 셔츠, 구두수선, 커피·주스·유아도서 정기배송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 서비스는 출시 후 매달 거래액이 80%씩 뛰고 있다는 후문이다.
잇따른 혁신 덕분에 모바일11번가의 앱 순방문자 수(UV)도 올 들어 내로라하는 소셜커머스·오픈마켓을 모두 제치면서 쾌속 순항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올 1~4월 오픈마켓 3곳(11번가·G마켓·옥션), 소셜커머스 3곳(쿠팡·티몬·위메프) 등 6개 업체 모바일 앱 UV를 조사한 결과 11번가의 월평균 UV가 817만8,468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UV 증가율에서도 모바일11번가는 62%로 가장 좋았다.
앱뿐 아니라 모바일 웹까지 더하면 11번가의 UV는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뽐낸다. 11번가는 1억2,710만7,599명으로 지난해 앱과 웹을 합친 모바일 전체 UV에서 국내 온라인쇼핑몰 중 1위를 기록했고, 올 1~4월에도 4,982만3,501명으로 최선두를 달리고 있다.
모바일11번가의 이런 성공에는 SK플래닛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시럽페이’와 만난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지난해 11월 보유 쿠폰·포인트·제휴카드 할인·T멤버십 할인·OK캐쉬백 할인 등을 한번에 적용해 결제할 수 있는 ‘원 클릭’ 복합결제 기능을 선보인 뒤 시럽페이의 성장세가 가히 폭발적이란 게 SK플래닛 측의 설명이다. 4월 기준으로 11번가 신용카드 결제 고객 5명 중 1명은 시럽페이를 통해 결제했으며 시럽페이 전체 누적 거래액은 4,000억 원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지문인식 결제 기능까지 제공해 서비스 질을 한 단계 높였다.
시럽페이를 총괄하고 있는 SK플래닛 이은복 본부장은 “11번가에서 간편결제의 편의성뿐만 아니라 보안성까지 극대화함으로써 모바일에서 최적의 쇼핑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자부했다.
직매입 사업 진출, O2O 서비스 출시, 모바일 강화 등 신성장동력 확보뿐 아니라 전통의 오픈마켓으로서 유통 협업 업체 확대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AK플라자·아이파크·대구백화점 등 7개 백화점이 등이 최근 11번가에 입점했으며 홈플러스·GS슈퍼마켓과도 당일 배송 서비스를 제휴했다. 이밖에 단독상품 판매를 확대하고, 사이트 내 ‘롯데제과 전용관’을 개설하는 등 특화 전략도 지속하고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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