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산(産) 철강제품(도금판재류)에 최대 48%의 반덤핑 과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통상 전쟁에 애꿎은 한국 기업만 불똥을 맞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포스코 등 철강사들은 대미 수출 전략을 다시 수립할 방침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이 철강을 두고 본격적인 통상 전쟁에 나섰다”며 “향후 공산품 같은 기타 산업으로 불씨가 커질 경우 한국도 유탄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수입산 철강제품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한국을 비롯해 중국·인도·이탈리아·대만 등에 반덤핑 과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업체별로 보면 현대제철이 48%에 육박하는 관세를 맞아 가장 큰 부담을 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은 이번에 반덤핑관세 대상이 된 내부식성 철강을 미국에 연간 10만톤 가량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8.75%에 이르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 받았고 포스코 역시 제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제철의 한 관계자는 “오는 7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릴 최종 판정을 예의 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ITC가 반덤핑 관세 부과를 확정하면 내년부터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미국 정부가 철강 공급과잉의 진원지인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을 대상으로 작심하고 칼을 빼 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과잉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주요 철강사들이 잇달아 문을 닫을 정도로 심한 경영난에 시달리자 실력 행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상무부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중국산 냉연강판에 522%에 이르는 반덤핑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정도 관세는 사실상 수출금지 장벽과 마찬가지 수준의 제재”라며 “앞으로 중국은 물론 한국산 철강제품에도 고율의 관세를 물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는 당시 일본산 냉연강판에 대해 71.35%의 반덤핑 관세를 물렸다.
미국의 반덤핑 공세가 강화되면서 철강제품의 수출은 줄어들고 있다. 올해 1·4분기 철강사들은 총 764만5,000톤을 수출하고 574만2,000톤을 수입해 여전히 ‘순수출’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폭은 전년 대비 17% 넘게 빠졌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로부터 반덤핑 관세를 부과 받은 유정용 강관의 경우 1·4분기 수출량이 44만6,000톤으로 전년 대비 44%나 줄었다.
허를 찔린 정부는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산업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반덤핑 판정이 나온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며 “전 세계가 철강 공급과잉으로 보호무역 기조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조치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덤핑 관세는 일단 판정이 내려지면 사실상 손 쓸 방법이 거의 없다”며 “정부가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사전에 대응책을 세우지 못한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서일범
·박홍용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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