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26년 3월16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어번시에 묘한 물체가 솟아올랐다. 과학자 겸 철학자였던 로버트 고다드가 쏜 로켓이었다. 인류 최초로 액체추진제(연료와 산화제의 통칭)를 사용한 액체로켓이었다. 그렇지만 불과 2.5초 동안 12m 상승하는 데 그치자 당시 언론에서는 고다드를 엉뚱한 몽상가로 치부하며 조롱했다.
하지만 고다드의 도전은 우주 개척의 시발탄이 됐다. 정부가 2020년 달 탐사를 달성하겠다며 올 들어 한층 가속도를 내는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사업도 시조는 고다드의 액체로켓이라고 할 수 있다.
고다드 이전의 로켓들은 흑색화약 가루 같은 고체추진제를 이용한 고체로켓이었다. 고체추진제는 화약인 니트로글리세린과 니트로셀룰로스를 섞어 마치 고무처럼 탄력이 있으면서도 단단한 덩어리로 제조된다. 고체로켓은 추진제에 한번 불이 붙으면 중간에 끌 수가 없고 추진제의 연소 강도를 조절할 수 없어 정교한 비행조작이 요구되는 우주발사체에 부적합하다.
반면 액체로켓은 추진제의 연소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이는 로켓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액체로켓 몸체의 대부분은 연료와 산화제 탱크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 연료와 산화제가 배관을 타고 로켓 후미 연소실에서 섞여 연소하면서 추진력을 낸다. 이때 각 배관 등에 달린 밸브가 빠르게 닫히고 열리면서 뿜어져 나오는 연료와 산화제의 양을 미세하게 조절해 연소 강약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주요 우주발사체에서는 추진제 배관에서 밸브가 열고 닫히는 시간이 최저 0.002초로 정밀하게 연료와 산화제 분사제어가 이뤄진다. 배관을 타고 연소실에 유입되는 연료와 산화제가 안개처럼 미세하게 뿜어져 나와 골고루 섞여야 불완전연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연료와 산화제를 초속 최대 60m(탄화수소계열 연료 기준) 정도의 고속으로 뿜어 서로 부딪히게 함으로써 미세한 포말로 분산시켜 섞는 게 핵심 기술이다.
로켓 추진제에 굳이 산화제가 필요한 것은 우주 공간에 산소가 없어 연료의 점화를 촉발시킬 대체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액체로켓 출현 90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학계와 산업계는 수천 가지 조합의 연료와 산화제 배합을 시도해왔다. 추진제 원료가 경제성을 갖춰야 하고 로켓 부식을 막기 위해 독성이 약해야 하며 연소시 높은 에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끓는 점이 높고 어는 점은 낮아 보관·운용의 안정성도 높아야 한다. 가장 애용되는 추진제로는 지난 70여년간 각광 받아온 히드라진이라는 물질이다. 독성이 적고 비등점이 매우 낮은 액체메탄과 액체산소, 혹은 액체수소와 액체산소의 배합도 추진제로 활용된다.
추진제 연소시 발생하는 고온고압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액체로켓 개발의 요체로 꼽힌다. 고다드가 시험비행했던 액체로켓은 연소실 압력이 3.5기압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로켓 중에는 연소실 압력이 최대 200기압을 뛰어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소로 발생하는 가스 온도는 최대 섭씨 3,700여도에 이른다. 이 정도 온도와 압력에서는 엔진이 녹아버리거나 균열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로켓들은 냉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냉각제를 따로 두지 않고 추진제 자체를 냉각제로 쓴다는 것이다. 액체수소만 해도 온도가 영하 253도를 밑돌기 때문에 냉각제로 쓰기에 적합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 중인 한국형 우주발사체는 최근 연소시험 등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성공적인 연소시험을 위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조합돼야 한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리는 이미 나로호를 제작하고 성공적으로 발사해 러시아가 보유한 로켓의 정밀한 발사 시퀀스 노하우 등을 배울 수 있었다”며 “앞으로는 산학협력을 통해 한층 더 기초적인 연구개발의 토대를 넓혀야 한다”고 제언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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