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서자 재계는 정권 말만 되면 불어닥치는 사정(司正) 바람이 이번 정권에서도 되풀이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 임원은 “총선 이후 기업 사정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며 “롯데가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수사의 신호탄이 될지 조마조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번 수사가 기업 전반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따라 대규모 실직 사태가 예고돼 내수경기가 심상치 않은 시점에서 그나마 투자여건이 괜찮은 롯데그룹의 투자가 움츠러들면 경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검찰이 지난해 포스코 수사처럼 시간만 질질 끄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인 만큼 죄를 지은 부분이 있다면 처벌하되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 말마다 반복되는 ‘대기업 길들이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선이 임박하면 여권 후보편, 야권 후보편으로 나눠 ‘이열종대’로 기업들을 줄세우고 그 결과에 따라 반대편 기업들이 불이익을 겪는 후진적 관행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며 “지난 총선 과정에서 여권의 유력 후보들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어 어느 쪽에 줄을 서기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물타기’ 수사에 애꿎은 롯데가 희생양이 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홍만표·진경준 등 전현직 검사장들의 대형 비리 사건이 잇달아 터져 나오는 가운데 검찰이 비판 여론을 덮기 위해 일종의 기획수사에 나섰다는 얘기다.
검찰의 수사 타이밍이 경제 활성화와 지나치게 어긋나 ‘엇박자 수사’라는 의견도 나왔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검찰은 독립적 수사기구이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게 당연한 책무”라면서도 “한국은행이 선제적 금리 인하에 나서고 정부 역시 추가경정예산과 같은 재정확장 정책을 검토하는 마당에 손뼉을 마주 쳐야 할 기업의 손발을 묶는 과잉수사는 지나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보여주기식’ 투자에 나설 수 있지만 리스크가 큰 모험적이고 과감한 투자는 사실상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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