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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산업 이대로 몰락하나

기술·품질 경쟁력 여전히 세계 최고<br>‘소나기’ 피하면 ‘해 뜰 날’이 다가 온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3도크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 컨테이너선. 3도크는 길이 640m, 폭 97.5m, 깊이 12.7m로 축구장 6개 크기다.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대한민국의 조선산업 체면이 요즘 말이 아니다. 국내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6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현재 신규 수주가 없다시피 한 상황까지 맞자 조선업은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무리하게 구조조정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전히 한국 조선업은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불황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업은 수십년간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한 지금은 왜 위기에 빠져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까. 한국 조선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본다.

한국 조선업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국내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엄청난 영업손실을 냈다. 현대중공업 1조6,764억 원, 삼성중공업 1조6,646억 원, 대우조선해양 3조765억 원으로 모두 합하면 6조 원이 넘는다. 올해 들어 4월까지 국내 조선업계는 선박 9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조선 관련 계열사 임원의 약 25%를 감축했다. 지난해도 과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등을 진행해 약 1,500명 가량을 감원한 현대중공업은 해양2공장 가동도 중단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1만3,000명 수준인 인력을 2019년까지 1만명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지난 2년간 약 1,500명을 줄인 삼성중공업은 올해 들어 상시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고, 수원사업장, 당진공장 등 자산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도대체 한국 조선업계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지경이 되었을까.

유럽을 밀어낸 일본의 기술력
“해외 선박 관련 박람회에 가서 선주들을 만나보면 한국 조선소에 대해 최고라고 평가해요. 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원가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약하다는 소리도 하지만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에서 배를 짓겠다는 선주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선박을 좋은 품질에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죠.”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저하가 지금의 위기를 불렀으며, 조선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여론에 대해 “일반인들의 오해”라고 강조했다.

유럽이 조선산업의 주도권을 일본에 뺏기고, 일본이 한국에 뺏겼듯 우리도 곧 중국에 밀릴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과거 유럽과 일본이 조선산업 주도권을 상실한 과정은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양종서 연구원의 설명이다.

영국, 독일, 스웨덴은 조선업을 주도하던 나라였다. 탄탄한 기계공업 기술과 전통적으로 강한 해운업을 배경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화된 조선 기술과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득권을 유지하던 유럽은 불과 10여년 만에 일본에 우위를 빼앗기고 만다.

1960년대 유럽 조선업체들은 잦은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후발주자로 조선업에 뛰어들었던 일본은 유럽에 비해 낮은 노동비용과 정부의 각종 지원에 힘입어 경쟁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 무렵 일본은 ‘블록공법’이라는 결정타를 유럽에 날렸다. 블록공법은 건조할 배를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눠 따로 제작한 뒤 이를 용접해 붙여 완성하는 공법이다. 일본이 도입한 블록공법과 용접기술은 조선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이었다. 당시 유럽 조선업체들은 두 장 이상의 강판을 결합하기 위해서 철판에 구멍을 내고 리벳을 끼운 뒤 밖으로 튀어나온 리벳을 망치로 두드려 결합했다. 유럽 업체들은 블록공법과 용접기술을 도입한 일본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일본의 생산성이 유럽보다 3배나 높았다. 유럽 조선업체는 블록공법으로 재빨리 전환하지 못했다.

양종서 연구원이 설명한다. “유럽도 블록공법과 용접기술을 도입하려 했지만 노조 저항에 부딪혔어요. 유럽 조선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잃을까봐 두려웠던 겁니다. 리벳작업은 노동력이 매우 많이 듭니다. 반면 용접으로 생산방법을 바꾸면 노동력을 확 줄일 수 있어요. 게다가 용접기술을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용접은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에요. 그래서 유럽 조선업체는 블록공법으로 빨리 전환하지 못한 겁니다. 효율성과 원가 싸움에서 일본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일본의 독주는 계속되는 듯했다. 1960년대 말에는 세계 선박 수주량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1차 오일쇼크(1973년) 전인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으로 만들었던 선박들의 교체 시기가 도래했다. 당시 글로벌 경기도 좋았다. 조선업을 주도하던 일본에 엄청난 수주물량이 쏟아져 들어왔다.

해운업계에는 선복량(배에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 과잉이 일어났다. 양종서 연구원이 설명한다. “선복량 과잉 원인은 유럽인들의 선박 투기에도 있었어요. 유럽인들은 배에 대해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에 대한 투기 성향이 대단해요. 글로벌 경기가 좋을 때에는 해운 운임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기존 선사뿐만 아니라 해운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배를 사서 해운업체에 배를 임대해 돈을 벌려고 나섭니다. 전 세계적으로 해운사가 필요한 배의 양이 100이라고 한다면 130~150 정도로 발주가 이뤄집니다. 매번 그런 사이클을 보여왔어요.”

일본이 배를 엄청나게 수주한 상황에서 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1978년 2차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경기가 완전히 죽었지만 선박 과잉 상태는 유지되었다. 더 이상 배를 만들겠다는 선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불경기가 20년 동안 지속됐다. 1990년대 중후반에 가서야 조선업계 불황이 풀리기 시작했다.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말한다. “일본처럼 구조조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의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실패사례로 꼽혀요. 지나친 구조조정으로 미래 성장잠재력을 아예 없애버렸으니까요. 조선업황이 회복되면 우리가 규모를 줄인 만큼 다른 나라 경쟁사가 해당 물량을 가져갈 겁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조선 3사를 유지하면서 설비와 인력을 감축하는 틀 안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할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조선산업의 첫 번째 기회는 글로벌 조선업황이 좋지 않았던 1970년대에 찾아왔다. 지금의 국내 조선 3사 체제가 갖춰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1973년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가 완공됐고, 1978년과 1979년엔 대우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문을 열었다.

일본 정부는 조선 시장이 장기침체에 빠지자 1976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조선업을 사양산업으로 규정했다. 대형 조선업체들을 합병시키고 대형 도크를 대부분 폐쇄했다.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등 일본 조선산업 전성기를 주도한 회사들은 1990년대 이후 사업구조를 항공우주, 철도, 발전 부문 등으로 재편하고 조선업 비중은 10% 미만으로 줄였다.

일본의 결정적인 패착은 또 있었다. 설계·연구 인력을 모두 퇴출시킨 것이다. 이들을 다른 중공업 분야로 재배치하거나 해고했다. 심지어 대학교 조선 관련 학과도 문을 닫아버렸다. 조선소에 일자리가 사라지자 1999년 도쿄대학교는 조선학과를 아예 폐지해버렸다.

일본은 조선 설계·연구 인력을 퇴출시킨 뒤 ‘표준선박’ 전략을 고안해냈다. 그동안 일본이 개발했던 선박을 표준화시켜 똑같은 배만 만들어 파는 형태다. 이렇게 하면 설계비가 들지 않아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선업은 ‘맞춤형 주문생산’이라는 산업 특성을 갖고 있다. 선주마다 요구사항이 모두 다르다. 선주가 요구하는 설계대로 만들어줘야 한다. 김용환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가 설명한다. “일본은 표준선박으로 제품을 싸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겁니다. 그런데 싸게는 만들 수 있는데 선주들이 원하는 선박을 만들어 주지를 못해요. 선주들이 설계를 조금만 바꿔달라는 요구도 일본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설계인력이 없어서요.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선박을 짓겠다는 선주들이 한국 조선업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틈을 비집고 한국은 대형 도크 건설에 집중 투자했다. 많은 유럽 선주들이 한국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유럽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던 조선업 패권을 한국이 차지한 게 이때부터다. 1993년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수주 1위로 뛰어올랐다. 2000년부터 한국은 수주·건조·수주잔량 3대 지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35~40%의 점유율로 시장을 선도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이 있다.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재를 수입하고 완제품을 수출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물동량 증가를 가져왔고, 당연히 물자를 싣고 나르는 선박 수요가 폭증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는 물론이고, 선체 블록 일부를 하청 받아 납품하는 중소형 조선사들 역시 너도나도 직접 배를 짓는 건조 사업으로 진출하게 된다. 대형 선박 중심의 수주를 하는 빅3가 폭증하는 주문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중소형 조선소들이 영업을 할 수 있는 틈새시장도 확장되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활황기가 지속되던 2008년 9월 14일,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금융권은 주머니를 닫았다. 해운사들은 선박을 발주한 조선사에 선수금 지급을 연기하거나 발주 계약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의 작업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래픽. 2.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세계 최대 원통형 FPSO가 제작되고 있다. 3.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미국 천연가스·석유 공급업체 트랜스오션에 인도한 드릴십. 4. 영국 북해에서 심해 원유를 시추 중인 FPSO 모습.


한국 조선산업을 늪에 빠트린 해양플랜트
조선업계 전반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바로 그때, 한줄기 빛처럼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해양플랜트’ 사업이었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 매장된 석유나 가스 등 천연자원을 시추해 생산하는 설비를 말한다. 말 그대로 바다에 공장을 짓는 사업이다. 드릴십(해상플랜트 설치가 불가능한 심해 지역에서 원유를 찾아내는 선박 형태의 시추설비)이나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Offloading ·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조선 3사가 해양플랜트 수주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10년쯤이다. 원인은 국제 유가와 깊은 관계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국제 유가는 수직 상승했다가 다시 2009년에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2010년부터 유가가 다시 고공행진을 시작해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았다. 고유가 행진이 이어지자 전 세계적으로 심해석유 시추 논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심해석유 시추 원가는 배럴당 60~80달러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은 바다 밑에서 석유를 퍼올리는 작업에서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석유 메이저들 사이에서 그동안 실험적으로만 접근했던 심해용 드릴십 제작과 FPSO 건설 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용환 교수가 설명한다. “심해용 대형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대형 도크를 가진 곳은 한국과 중국밖에 없어요. 그런데 발주처에서 중국의 기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유럽과 미국 조선업체는 도크가 작아서 소형 해양플랜트밖에 만들 수 없어요.”

해양플랜트 수주 계약은 대부분 ‘턴키(Turn-key) 방식’으로 이뤄진다. 턴키는 총액을 정한 뒤 수주를 따낸 사업자가 해당 금액 안에서 설계와 구매 · 시공을 모두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사업 진행에 별 무리가 없으면 이익을 크게 남길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 부담은 발주처가 아닌 사업자가 전부 떠안아야 한다.

그러나 기존에 컨테이너선이나 LNG, LPG 선박 등 상선에 주력했던 한국의 빅3에게 해양플랜트 사업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해양플랜트는 기초설계를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 엔지니어링업체가 맡고 있다. 여기서 1차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양종서 연구원이 말한다. “설계에 하자가 있어도 설계회사들은 책임지지 않는 계약이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설계업체들은 자기들이 책임지는 게 아니니까 일단 한 번 설계해본 겁니다. 실제 건조작업에 들어가면서 설계 변경이 엄청나게 있었어요. 한번 설계를 변경하고 실제 현장에 도면이 뿌려지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이에 대한 페널티를 우리 조선사가 선주한테 물어야 했어요.”

애초 예상했던 작업일수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기 일쑤였다. 덩치 큰 해양플랜트가 도크를 차지하고 빠져나가지 않으니 뒤에 수주한 선박 제작도 밀리게 됐다. 국내 업체끼리 지나치게 경쟁하다 보니 원가 이하의 저가로 수주를 받은 것도 문제였다. 수조 원 손실이 이렇게 났다. 이것이 현재 한국 조선산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다.




(위) 현대중공업은 1만톤급 초대형 선박 블록을 육상에서 제작한 뒤 도크로 옮겨 선체 조립을 진행하는 최신 ‘테라공법’을 적용하고 있다. (아래) 각종 해양플랜트를 건조 중인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전경.


중국 추격, 아직은 두렵지 않아
일각에서는 중국의 추격으로 인해 한국의 조선산업도 일본처럼 쇠락의 길을 따라갈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현실이 어떤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 조선산업은 정부의 산업장려와 막대한 금융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자국에서 필요한 선박은 자국에서 건조한다는 정책으로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으로 팽창했다. 중국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한국을 제치고 수주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들어 중국 조선사는 전 세계에서 발주된 배의 절반을 쓸어가기도 했다.

양종서 연구원이 설명한다. “중국의 낮은 인건비로 한국이 가격경쟁에서 밀린다는 지적이 있죠. 중국 인건비는 한국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입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그 이하 수준입니다. 가격경쟁력도 품질을 희생해서 얻은 것이에요. 중국에서 만든 배 품질이 조악하다는 걸 시장에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 수주를 맡기는 선주들은 대부분 중국 선주들이나 중국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선주들입니다.”

중국 조선산업은 벌크선(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그대로 적재할 수 있는 화물전용선)이나 탱커(액체화물을 선창 내에 그대로 싣고 운반하는 배) 같은 저부가가치 선종을 만드는 데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중국 조선산업이 숙련공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기능직의 경우 농민공 출신의 파견노동과 사내하청 노동이 80~95%를 차지한다. 노동자들의 잦은 이동으로 저숙련 노동인력밖에 없기에 더 많은 연마공과 용접공을 투입해야만 하고, 향후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전환하는 데도 기능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엔저를 무기로 일본 조선산업이 부활하는 기운도 감지되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김용환 교수가 설명한다.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핵심 인력 보유에 있습니다. 일본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숙련된 기술인력이 사라졌어요. 표준선박을 내세운 일본은 더 유리해진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한국이 아닌 중국의 조선산업 시장점유율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에 비춰보면 한국 조선산업은 사양산업이라고 할 수 없어요.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 인적·물적 자원이 더 우수하고 기술경쟁력을 가진 산업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조선산업의 변혁기에 와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선박건조에 집중하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들어 바다에서도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적용할 선박 연료 규제가 국내 조선사에겐 천우신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황 함유량이 0.5% 이내인 연료만 사용하라는 규제다.

김용환 교수가 설명한다. “노후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바꾸려는 교체 수요가 폭주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연료 효율이 높으면서도 친환경적인 선박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곳은 한국이에요. 이미 20~30% 연료효율을 높인 선박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양종서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오히려 연구· 개발 투자를 늘려 친환경·고효율 선박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축적해야 할 때입니다. 조선산업 주도국가가 이런 기술 변혁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세계 경제사에 남을 일이에요. 지금의 역경을 잘 버텨내면 한국 조선업체 도크에 배가 들어올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겁니다.”




(위) 2008년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업계 최초로 자동용접 로봇을 개발했다. (아래) 2013년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만든 친환경 선박 엔진


다시 다가올 조선업 호황기 대비해야
아직은 한국 조선업계의 붕괴를 논할 시점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조선업은 막대한 시설 자금이 필요한 기간산업이다. 시장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산업의 경우 기존 사업자가 확실한 경쟁 우위를 점한다. 한국 조선 3사가 수많은 역경을 뚫고 세계 1위로 성장하는 동안 축적해온 기술력과 경쟁력은 엄청난 자산이다.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얼마든지 이겨낼 저력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홍성인 연구위원이 말한다. “일본과 중국은 저가인 벌크선과 탱커 비중이 70%에 달하지만 한국은 40% 정도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컨테이너선, 유조선, LNG선, 해양플랜트로 이뤄졌습니다.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한국이 훨씬 우월합니다.”

해양플랜트는 지금은 ‘화근’이지만 언제든 ‘축포’가 될 잠재력을 지녔다. 경험 부족 탓에 비용이 늘고 손실을 입었지만 이 부작용 역시 한국이 가장 먼저 경험한 것이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전 세계 상선 발주를 휩쓸면서도 해양플랜트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의 핵심 용도는 석유자원 개발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에너지 수요가 감소하고 셰일가스 생산량 증가로 유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석유 메이저들은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축소 또는 유보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면 결국 해양플랜트 발주량이 늘어난다. 이 경우 발주회사(석유 메이저) 입장에선 경험이 많은 업체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력을 갖춘 한국 조선 3사의 몸값이 크게 뛸 수 있다는 얘기다. 수익성 악화의 근본적 원인인 설계 능력 부재도 조선 3사 모두 연구·개발을 진행 중인 만큼 조만간 답을 찾을 전망이다.

양종서 연구원이 말한다. “해양플랜트 사업을 위해 앞으로는 해외 유수 설계 엔지니어링사와 컨소시엄을 맺는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말도 안 되는 계약조건으로 턴키를 받아 손해 보는 일도 없어질 겁니다. 앞으로 국내 조선소가 책임을 몽땅 뒤집어쓸 계약일 경우 국내 은행들이 RG(Refund Guarantee·선주는 선박을 주문할 때 선수금을 지급한다. 이후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조선소측 은행이나 보험사에 RG보험을 가입한다. 선주는 선박을 제대로 인도받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선수금을 대신 지급받을 수 있다) 발행을 해주지 않을 겁니다. RG가 없으면 한 달 뒤 계약이 자동으로 무효화되니까요. 이와 관련한 심의 기구도 이미 만들었습니다.”

조선업은 전자, 자동차와 함께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지금도 수주잔량으로 따졌을 때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강국이다. 조선업은 막대한 시설 자금이 필요한 기간산업이다. 한국 조선 3사가 축적한 기술력과 노하우는 아직 확고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홍성인 연구위원이 말한다. “조선업의 특징 중 하나는 불경기와 호황기를 8~20년 주기로 넘나든다는 겁니다. 그 때문에 선진국인 유럽과 일본도 조선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선업이 세계 경제와 연동되어 불황기일 뿐이죠. 단기적으로 내년에는 회복이 예상되고 중기적으로는 산업환경이 많이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를 대비해 엔지니어링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양종서 연구원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사양산업이 아니라 시황 주기상 바닥에 와 있을 뿐입니다. 조선업은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어요. 우수한 노동력을 보유한 우리나라에 적합한 산업입니다. 여전히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죠. 지금은 버티는 조선소가 이기는 싸움이에요.”

정부가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 칼을 빼들자 조선사들은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자산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등을 진행하며 업황이 살아날 때까지 버티겠다는 판단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장기적이고 일관되게 조선사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엔지니어링 역량과 인력의 질을 높이는 조선업계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새 시장을 창조할 수 있는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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