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는 영화&경제] (5)‘주피터 어센딩’과 롯데家 형제의 경영권 분쟁
입력2015-10-28 11:15:09
수정
2015.10.28 11:15:09
문성진 기자
#만약 지구가 특정 재벌가문의 소유라면…
지구가 특정한 재벌가문의 소유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가정(假定)이지만 SF영화 ‘주피터 어센딩’에서는 우주의 유력 가문중 하나인 아브라삭스가 지구의 소유자다. 아브라삭스 가문은 지구인을 죽여서 만든 불로(不老) 약을 팔아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고 우주에 대한 지배권을 틀어쥐고 있다. 그런 막강 재벌가(家) 아브라삭스에서 지배자인 여왕이 죽으면서 지구에 대한 경영권을 한 손에 움켜쥐려는 맏아들 발렘(에디 레드메인)과 지구 소유권을 찬탈하려는 차남 타이터스(더글러스 부스)가 경영권 장악을 둘러싸고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인다.
국내 재계 순위 5위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의 다툼은 차남이 지난 8월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다시 장기화할 조짐이다. 장남의 반격은 지난 14일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 주총에서 승리해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장남은 한국과 일본에서 차남을 겨냥해 롯데쇼핑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일본롯데홀딩스의 지분 27.8%를 확보하고 있는 종업원지주회에 대한 설득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장남은 이와 동시에 국내 주요 언론을 직접 방문해 자신의 입장을 적극 설명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맞서 차남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경제단체 회의 등 공식행사에 참석해 롯데그룹의 대표성을 과시하는 한편 일본롯데홀딩스 본사로 출퇴근하며 종업원지주회 등 자신에 대한 우호지분을 확고히 다지는 모습이다.
#장남·차남, 지구 경영권 독식하려고 악행 일삼아
영화 ‘주피터 어센딩’의 주인공은 주피터(밀라 쿠니스)다. 화장실 청소부에 이민자 신세로 살아가야 하는 주피터는 신세가 고달프다. 그렇지만 그녀는 본래 죽은 아브라삭스 여왕이 환생한 고귀한 존재. DNA까지 여왕과 일치한다. 그러니까 주피터는 우주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지구의 주인으로서의 존엄한 신분을 타고난 셈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브라삭스 가문의 장남 발렘은 주피터를 죽이고 자신이 지구에 대한 소유권을 독차지하려고 우주 현상금 사냥꾼을 지구로 보낸다. “지구는 내 것이야. 내 권리지”라는 탐욕스러운 말을 되뇌이면서. 차남 타이터스 또한 지구 경영권 찬탈을 꾀하면서 주피터를 상대로 간교한 꼼수를 부린다. 그러나 주피터가 누구인가. 지구의 주인이자 우주의 지배자 아닌가? 게다가 그녀 곁엔 듬직한 케인(채닝 테이텀)이 늘 함께 있다. 절대 전투력을 갖춘 우주군인 케인은 주피터를 수호신처럼 따라다니며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목숨을 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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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터는 여왕의 환생이자 지구의 수호자
‘주피터 어센딩’은 헐리우드의 괴짜감독 워쇼스키 남매가 감독했다. ‘메트릭스’ 3부작과 ‘브이 포 벤데타’ 등으로 명성이 높은 남매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압도적 스케일의 전투장면을 선보였다. 영화엔 철학적 사색도 배어있다. 워쇼스키 남매는 “우주 탐험을 통해 인류의 본질을 탐구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워쇼스키 남매는 동양의 종교철학까지 적극 차용했다. 예컨대 아브라삭스 여왕이 주피터로 환생해 지구의 주인으로서의 적통을 유지한다는 발상이 그렇다. 이는 흡사 티베트의 종교 라마교에서 법왕(法王)인 달라이라마가 죽어서 다른 몸으로 환생해 제정일치의 통치자로서 적통을 이어가는 모습과 빼닮았다.
그렇다면 롯데 경영권 분쟁은 어떤가? 롯데가(家)의 장남과 차남 간 다툼 또한 많은 부분에서 ‘주피터 어센딩’의 경영권 싸움과 유사하다. 그러나 롯데의 형제 다툼은 그 결과가 롯데그룹의 위상 실추는 물론 오너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들 전반에 지대한 악영향이 초래될 것임을 고려할 때 승자가 누가 되든 깊은 상처를 남기는 ‘마이너스 섬’으로 귀착될 것이 뻔하다.
#게임엔 상대가 있기 마련…‘공생’의 해법은 없을까?
모든 게임에는 상대가 있기 마련. 한 쪽에서 모든 것을 차지하려 들다간 둘 다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떠안는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게임의 방향을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 섬’으로 돌릴 방법은 없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게임이론을 정립한 폰 노이만도 주장하지 않았는가? 이성적인 게임 참여자라면 ‘미니맥스 원리(mini-max principle)’를 준수하기 마련이라고.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모르겐슈타인과 함께 출간한 ‘게임이론과 경제행동’에서 두 어린이가 케이크를 나눠 먹는 경우를 예시했다. 그 내용을 보면, 한 개의 케이크를 놓고 형제가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하기 때문에 부모는 다음과 같은 절충안을 내놓는다. 즉 케이크를 나누는 것은 형에게 맡기되 선택은 동생이 먼저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르는 쪽이 ‘작은 쪽 케이크(mini)’를 가능한 한 ‘가장 큰 크기(max)’가 되도록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포이만의 설명이다.
롯데가(家) 형제는 두 어린 아이처럼 미니맥스 원리에 따라 장남과 차남 중 한 사람이 케이크를 자르고 한 사람이 고르는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두 형제는 아버지의 건강 상태와 후계 문서의 존재 여부, 경영 자질 문제 등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갑론을박을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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