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소 7,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해오라는 채권단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해운 경기가 좀처럼 반등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어서다. 한진해운은 이번주 중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출할 계획이지만 그 내용이 미흡할 경우 법정관리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3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글로벌 해운동맹인 ‘디 얼라이언스’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의 해운 3사(NYK·MOL·K라인)는 최근 올해 실적 전망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이는 해운업 경기 전망이 올해 초보다 더 악화했다는 뜻이다. 한진해운은 이들 업체들과 화물 노선 및 선박을 공유하고 있어 동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회계연도 기준 150억엔(약 1,630억원)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던 NYK는 최근 실적 전망을 변경하면서 150억엔의 순손실로 예상치를 뒤집었다. 이 회사는 지난 1·4분기 적자를 냈지만 하반기 이후 해운 시황이 개선돼 연간 기준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고 전망해왔다. 하지만 컨테이너선업계의 성수기인 3·4분기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운임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다 엔고에 따른 환차손까지 겹쳐 실적 전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해운업계의 분석이다.
K라인도 실적 전망치을 내렸다. 지난 4월 1·4분기 실적 발표 때는 연간 105억엔(약 1,114억원)의 순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으나 최근 적자 예상액을 455억엔(약 4,94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MOL은 올해 150억엔의 흑자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지만 이는 연초 예상치에 비해 25% 하향 조정한 수치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벌크선 운임은 그나마 올 들어 완만한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컨테이너선 운임은 바닥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진 한진해운도 타격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진해운은 그동안 당장의 유동성 위기만 벗어나면 해운 경기 개선에 따라 빠른 경영정상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불황의 터널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 입장에서는 채권단에 현금창출 능력을 입증할 수 있어야 자율협약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구안 내용을 둘러싸고 채권단과 더 큰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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