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성난 민심에 정부가 백기를 들기까지는 단 이틀이 걸렸다.
폭염 속에서 ‘전기요금 폭탄’을 맞게 된 국민의 여론이 심상치 않게 들끓고 있는데다 정치권에서마저 여야가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 목소리를 높이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흔들렸다. 지난 9일까지만 해도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에어컨을 하루 4시간 정도만 현명하게 사용하면 전기요금 폭탄도 없다”고 했던 산업부는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10일 밤 국회에서 긴급하게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는 당정 실무자회의가 열렸고 이후 11일 아침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청와대·새누리당 오찬→긴급당정협의를 거쳐 대책을 내놓기까지 딱 24시간이 걸렸다.
당정청이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인 데는 지난해 ‘연말정산 파동’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결정적이었다. 초기대응에 실패하면서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고 5,500만원 이하 소득자 541만명에게 총 4,227억원, 1인당 평균 8만원을 환급까지 해줘야 했다.
누진제를 둘러싼 여론은 그때와 여러모로 비슷했다. 전기요금과 관련한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의 브리핑이 보도된 뒤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에어컨 관련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워서 에어컨조차 못 트는 가정이 있다는 지적에 채 실장은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때도 요금 폭탄이 생긴다는 말은 과장됐다.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벽걸이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사용하거나 거실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4시간 사용하면 월 요금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도 했다. 여론은 폭발했고 누진제 개편의 목소리는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정치권까지 빗발쳤다. 더욱이 다음달 25일 전후로 8월 전기료 고지서가 각 가정에 뿌려지면 전기요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폭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정치권과 정부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대책을 마련한 이유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도 “비록 늦었지만 빨리 불을 끄고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책에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작업은 당장 올해 여름에 한정해 누진제를 완화하고 전기요금을 소급하는 단기 처방과 함께 누진 단계와 배율을 전체적으로 손보는 장기 대책 등 장·단기 방안이 동시에 들어갔다. 지난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도입돼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평가 받는 누진제를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6단계의 누진요금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최저구간과 최고구간의 누진율은 11.7배다. 구간이 높아질수록 가격 또한 몇 배씩 뛰어오르는 구조다. 반면 산업용·일반용·교육용 등 다른 용도의 전기요금에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야와 협의를 한 뒤 개편안을 마무리해 오는 26일 열리는 전기위원회에서 상정할 예정이다.
/이철균기자 fusionc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