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안전지대’라고 여겨진 우리나라에서 규모 5.8의 역대 최고 강진이 발생한 데 이어 일주일 만인 지난 19일에 규모 4.5의 지진이 또 발생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진 이후 흔들린 불안심리를 잠재우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이에 따라 원전 신규 건설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정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한수원은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를 포함해 오는 2029년까지 모두 10기의 원전을 신규로 건설할 예정이다. 계획대로 건설이 끝나면 국내에서 운영되는 원전은 현재 가동 중인 24기를 포함해 34기로 늘고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의 비중은 전체의 28.2%로 올라간다. 석탄발전(3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이번 ‘9·12 경주 지진’으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원전 공급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상시에도 원전 건설을 위해서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만만치 않은데 지진을 직접 겪은 후부터는 말을 꺼내는 것도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계획은 신청한 지 4년 만인 올해 6월에야 허가됐다. 2011년 12월 신한울 1·2호기 허가 이후 4년 6개월 만에 신규 원전의 건설이 허용된 것이다. 완공돼 시운전 단계인 신고리 3·4호기는 아직 운영허가를 받지 못했고 영덕에 지을 천지 1·2호기는 부지만 확보해둔 상태다.
문제는 전남 영광의 한빛 1~6호기를 제외한 18기의 원전은 물론 신규로 지을 10기의 원전 모두가 이번 지진이 발생한 경주와 동해안 일대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원전이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야당과 여당 일부에서도 원전 건설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태경·배덕광 의원 등 부산 지역 의원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한수원은 국내 원전이 일본 원전보다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나섰다. 먼저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 가압경수로(PWR) 방식인데 일본 원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비등경수로(BWR) 방식보다 기술적으로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꼽았다. 한수원은 “일본 원전은 원자로 내의 냉각수를 직접 끓여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운전하지만 우리는 이를 분리했기 때문에 외부로 방사성물질 누출 가능성이 적다”며 “만약 노심이 녹아 수소가 발생하더라도 우리 원전은 일본 비등경수로 방식과 달리 전기 없이 동작하는 수소재결합기가 있어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일반 토사지반이 아닌 암반 위에 지어진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수원은 “원자로 격납건물은 단단한 암반을 굴착해 조밀하게 철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해 짓는다”며 “단단한 암반층에 지은 원자력발전소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토사지반에 건설된 건물보다 30~50% 정도 진동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격납건물 등 주요 건물과 기기에 지진계측기 등 첨단 감시체계를 갖추고 지진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수원은 강조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원전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된 경향이 있다”며 “규모 6.5 지진은 규모 5.8 지진보다 강도가 약 11배 강하지만 국내 원전은 이런 지진이 바로 아래에서 발생해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원전에 대한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원전 24개의 내진 성능을 현재 규모 6.5에서 7.0까지 견딜 수 있도록 보강하는 작업을 2018년 4월까지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한 경주 인근 월성·고리 본부 원전에 대해 내년 말까지 ‘스트레스 테스트(잠재적 취약성을 측정해 안정성을 평가하는 것)’를 시행해 안전성을 확보해나갈 방침이다.
/세종=이철균기자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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