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성적표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들이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하고 경기악화로 기업의 신용등급은 줄줄이 추락하는 실정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온 중후장대 사업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제조업 가동률이 외환위기 직후 수준까지 하락하는 등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9.3%로 한 달 만에 1.3%포인트 상승했다. IMF 외환위기를 수습하던 1999년 8월 10.7%를 기록한 후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청년실업률은 6월에도 10.3%를 기록해 1999년 6월(11.3%)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소위 ‘장기 백수’도 외환위기 수준까지 늘어났다.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수는 지난달 18만2,000명으로 1년 새 6만2,000명이나 급증했다. 장기실업자 수는 1999년 8월 27만4,000명을 기록한 후 같은 달 기준 최대치다. 이에 따라 전체 실업자 중 장기실업자 비율도 지난달 18.27%까지 상승하며 1999년 8월(20%)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고용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인중개사 시험도 IMF 외환위기의 데자뷔다. 올해 시험 신청자는 19만1,000여명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4만명 늘었는데 IMF 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에도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공인중개사 시험신청자가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경기 불황의 징후는 산업 및 기업지표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신용평가사들이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은 159곳으로 전년대비 26곳 늘었다. 기업들이 더 비싼 이자를 물고 돈을 빌려야 한다는 얘기다. 회사 자체 신용등급이 하향조정 된 기업 수도 지난해 160곳으로 IMF 위기 직후인 1998년 171곳이 강등된 이래 17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 엔진도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중후장대 산업이 구조조정 등으로 한계에 다다른데다 수출부진까지 겹친 영향이다. 지난해 연간 제조업 가동률은 74.3%로 1998년 67.6%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 2·4분기에는 제조업 가동률이 72.2%까지 떨어져 1999년 1·4분기(71.4%) 수준까지 나빠졌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기 불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IMF 위기는 단발성 충격에 의한 것이라 금세 회복이 가능했지만 최근 경기 부진은 성장동력 부재에 따른 것인 만큼 쉽게 반전시키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가 쓰는 여러 정책은 경기 하강이 확인된 후 사후적으로 일부 조정하는 수준”이라며 “통화·재정·구조개혁 세 가지를 전방위적으로 추진하면서 경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신뢰를 경제주체들에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외환위기 당시에는 고용상황이 위축되며 실업률이 상승했지만 최근에는 구직활동 증가로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함에 따라 실업률이 상승하고 있다”며 “일부 지표만을 갖고 외환위기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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