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화학상의 영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분자기계’를 개발한 3명의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5일 201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자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의 장피에르 소바주(72) 교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프레이저 스토더트(74) 교수, 네덜란드 흐로닝언대의 베르나르트 페링하(65) 교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 과학자는 원자를 조작해 특정 모양과 운동의 방향성을 갖는 기계처럼 작동하는 분자구조를 디자인하고 개발한 업적을 인정 받았다.
분자기계란 쉽게 말해 톱니바퀴나 모터, 전기 스위치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구를 보통 0.1~10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수준의 원자크기로 구현한 것이다. 노벨위는 “수상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를 개발했다”며 이들이 개발한 분자기계는 “새로운 물질, 센서, 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 개발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해 옷을 만들 듯 분자를 (원자 수준의 조작을 통해) 인공 설계해 만드는 것이 분자기계”라며 “화학이란 학문의 본질은 분자의 과학인데 참으로 오랜만에 분자과학에서 노벨상이 나왔다”고 시상의 의미를 평가했다.
3인의 수상자 중 선구자는 소바주 교수다. 그는 지난 1983년 각각 고리 모양인 분자 2개를 연결해 사슬모양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분자기계 제작의 첫발을 뗐다. 그가 만든 이 사슬모양의 분자구조는 ‘캐터네인(catenane)’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그 다음의 진보는 1991년 스토더트 교수에 의해 이뤄졌다. 캐터네인이 단순히 고리를 연결했던 구조라면 스토더트 교수는 분자들의 고리에 일종의 회전축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자 수준의 막대를 꽂아 넣어 각각의 고리가 해당 막대를 중심으로 특정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구조를 ‘로탁세인(rotaxane)’이라고 부른다. 이를 활용하면 분자 크기의 근육이나 컴퓨터칩 등을 만들 수 있다. 세 번째 혁신은 1999년 페링하 교수가 이뤘다. 그는 이 같은 원리를 이용해 분자크기의 모터를 최초로 개발했다. 페링하 교수는 분자모터를 통해 그보다 1만배 큰 유리 실린더를 회전시키고 나노급 크기의 자동차를 설계하기도 했다.
분자기계는 이른바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원자 속의 전자를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어 움직이게 된다. 분자기계를 제작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재료는 현재의 기술로는 탄소나 수소·질소 등 유기물 원자다.
분자기계 기술은 아직은 실용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다만 앞으로 인체 내에서 약물이나 신경전달물질을 외부 환경에 맞춰 주입하고 전달하는 등의 초미세기계를 만드는 다양한 신기술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동환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0.1nm 크기의 원자를 조작해 기계로 만드는 것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예술의 경지”라며 “마치 톱니바퀴처럼 분자를 원하는 구조로 만들어 특정 방향으로 비대칭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우리 인체 내에서는 엄청난 양과 속도로 다양한 구조의 분자물질들이 만들어지는 데 소바주 교수 등의 선구적 연구로 앞으로 생체분자물질의 합성과 작동을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희망이 열렸다고 과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3인의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은 총 800만크로네(약 11억원)의 상금을 똑같이 나눠 갖게 된다. 시상식은 오는 12월10일 열린다. /민병권·권용민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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