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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총수들 외풍에 줄줄이 발목…성장 이끈 '한국式 오너경영' 흔들

  "오너 권한 급격히 제어땐 스피드경영 등 물거품

  글로벌기업 도약 길목서 중견기업 추락할수도"





“오너 경영에는 단점이 있지만 분명한 장점도 있습니다. 우리도 변신을 꾀하던 중이었는데….” (5대 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

최순실 국정농단의 후폭풍이 국내 대기업의 성장을 이끌어온 ‘오너 경영’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총수에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돼 의사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때로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박영수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이어 SK·롯데·CJ 등의 대기업 총수를 정조준하면서 오너 경영이 위기를 맞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오너 경영 때리기에 나섰다. 지주회사 설립 때 신설 법인의 자사주 의결권 부활을 제한하거나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집중투표·전자투표)하는 내용의 법안 등이 모두 오너 경영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17일 “오너 경영의 최대 장점은 총수가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 속도를 단축해 압축 성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오너 권한을 급격히 제어하면 대한민국 기업들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에 도전해야 할 길목에서 중견기업 수준에 만족하고 주저앉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의 발전사(史)에는 고비 고비마다 오너 경영진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부친인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1974년 사비를 털어가며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지금의 ‘반도체 강국 코리아’의 기틀을 닦았다. 삼성이 제2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도 최종 결재권자는 이건희 회장이었다. 삼성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체질 개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부도 위기에 몰린 기아자동차 및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전 등에서 “2등은 꼴찌”라는 뚝심을 앞세워 모두 인수에 성공해 지금의 세계 5위권 자동차업체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최고경영자(CEO)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자리를 건 결단은 오너만이 내릴 수 있다는 게 기업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너 권한이 위축될 경우 올해 대대적인 투자를 선언한 주요 대기업들이 보수 경영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은 지난해 말 글로벌 전장(電裝) 기업인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인수 작업이 아예 무산될 수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사면 이후 그룹 전반의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올해 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하이닉스 등 핵심 계열사를 중심으로 21조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힌 상황. 연초부터 어느 기업보다도 왕성한 투자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그룹 관계자들은 “최 회장이 공세적 투자 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역으로 최 회장이 다시 특검의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행동 반격에 제약을 받을 경우 경영 활동 전반이 축소 지향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롯데그룹 역시 올해부터 5년 동안 4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지만 역시 외부 변수에 따라 계획을 철회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재계는 삼성전자가 지주사로 전환하는 데 최소 10조원의 현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각종 ‘족쇄’가 덧붙여질 경우 이 비용이 2~3배 이상으로 뛸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삼성의 지주사 전환이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재계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의 경영 시스템 및 지배구조 ‘변신’을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의 경우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이사회 권한을 강화해 GE식 의사결정 구조로 변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부회장 구속으로 쇄신 작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롯데는 이달 중 정책본부 수술 방안을 공개하고 실행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신동빈 회장이 다시 한 번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로 몰리면서 역시 지연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에 앞서 SK는 200여명선이던 수펙스추구협의회 인원을 최근 150여명으로 줄이면서 ‘힘 빼기’에 나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경영의 단점에 대해서는 오너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며 “3~4세 경영인으로 넘어오면서 수평적 조직으로 쇄신을 진행하던 중 대형 악재가 터졌다”고 말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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