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국가다. 국내 여러기관들이 쏟아내고 있는 지표는 그야말로 암울하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 해 기준 만 65세 이상 인구(699만5,652명, 전체 인구의 13.5%)는 이미 만 15세 미만 인구(691만6,147명, 13.4%)를 추월했다. 이는 주민등록 통계를 전산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한국이 올해 고령사회에 진입한 뒤 2026년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통계청은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15년 12.8%에서 50년 뒤인 2065년 42.5%로 높아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상황이 이렇자 대체로 65세로 규정하고 있는 국내의 노인기준을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65세 이상도 충분히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이들을 노인으로 규정해야 하냐는 것이다.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가 올해를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노인연령 기준을 높이게 되면 가뜩이나 심각한 노인 빈곤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맞선다. 여러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나이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인 단체 내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대표단체인 대한노인회는 노인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 정부의 한 관계자는 “노인들의 경우 일자리센터 등에 가면 제일 먼저 받는 질문이 ‘몇 세이냐’는 것이다”며 “65세가 넘는다고 보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노인 단체는 노후 소득 보장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연령 기준만 높이면 수많은 노인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의견이 이렇게 팽팽히 맞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모두 사회적 논의만 하자 하지 올리자고도 내리자고도 말 못한다. 복지부 등이 지난 2015년 12월 내놓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노인기준 연령에 대한 사회적 논의 본격화’, 기재부가 지난 달 발표한 올해 경제정책방향에는 ‘노인연령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 본격화’, 고용부가 이달 진행한 2017년 업무보고에는 ‘노인연령 기준 상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라고만 언급돼 있을 뿐이다. 물론 사회적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사회적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차원의 노인 연령 상향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일본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어떻게 보면 노인연령 기준 상향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5년 전에 비해 오히려 후퇴했다. 기재부는 2012년 ‘100세 시대’에 맞춰 노인기준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75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중장기 전략 보고서를 내놓았다. 정부 차원에서 밝힌 정책 의지로는 당시가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다. 물론 기재부는 일부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자 노인 연령과 연계해 복지 혜택을 축소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며 계획 자체도 20~30년을 두고 중장기 추진할 사안이라고 선을 긋긴 했었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복지 혜택 수령과 관련된 노인연령 기준은 그대로 두고 근로와 연관이 있는 기준만 높이자는 절충안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만난 A부처 장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식적인 입장 말고 장관 스스로 노인연령을 몇 세로 하는 게 맞다고 보는지를 말해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것은 내가 자연인이 되면 말해주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첨예하게 얽혀있는 사안이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식이면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계속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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