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4대 회계법인이 외부감사 시장에서 유지한 ‘철옹성’ 같은 독과점 구조가 15년 만에 깨진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혐의로 재판과 금융당국의 감리를 받고 있는 딜로이트안진의 경영 구조 개편이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징계 시기와 수위에 따라 회계업계 2위인 딜로이트안진의 기업 외부감사 기능이 완전히 붕괴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딜로이트안진의 한 고위관계자는 1일 “금융당국의 징계 수위와 관계없이 경영자문(어드바이저리) 부문을 올해 상반기 중 분리해 별도 회사로 설립할 방침”이라며 “회계감사와 세무자문 업무는 기존 법인에서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계획대로 경영자문 부문이 떨어져 나가 따로 회사가 설립되면 딜로이트안진은 규모 면에서 4~5위권 회계법인으로 밀려나게 된다. 경영자문·지원 인력이 퇴사해 법인을 세워 회계사 수가 기존 1,131명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딜로이트안진 내에서 경영자문의 매출 비중이 39.1%에 달해 분리될 경우 실적 급감도 불가피하다. 지난 2002년 삼일PwC를 선두로 한 회계법인 ‘빅4’ 체제가 15년 만에 깨지는 것이다. 다만 영국 회계·자문 업체인 딜로이트는 기존 외부감사·세무자문 법인은 물론이고 새로 설립되는 경영자문 법인과도 제휴 관계를 맺어 사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딜로이트안진이 사업부별 ‘각자도생’으로 시나리오를 구체화하는 상황에서 관건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 결과다. 금융당국은 애초 오는 3월 말까지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일정은 다소 지연되고 있다. 딜로이트안진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혐의 1심 선고가 5월로 예정된데다 징계 수위 논의 주체인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의 인사가 예상보다 늦게 이뤄진 탓이다. 분식회계 징계가 확정되려면 금융감독원 감리위원회를 거쳐 증권선물위원회·금융위원회의 의결이 이뤄져야 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도 “여러 변수가 있어 3월 안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고 확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5년 대우건설의 3,896억원 규모 분식회계 사건을 논의할 때도 증선위에 안건이 3번 상정될 정도로 격렬한 논의가 벌어졌다. 최소 2조원에서 최대 5조원이 분식회계 규모로 추정되는 대우조선해양 사건은 대우건설보다 더 복잡해 심의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딜로이트안진에 과징금과 함께 업무정지(최대 1년)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업무정지를 받으면 외부감사 계약을 새로 체결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해당 회계법인은 폐업 위기에 놓인다. 특히 외부감사 대상 기업과 계약을 맺는 시점인 4월에 업무정지 징계가 적용되면 기간과 관계없이 딜로이트안진의 외부감사 기능은 공중분해 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회계업계 2위인 딜로이트안진의 외부감사 기능이 한 번에 분해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견해도 있다. 4대 회계법인의 한 대표급 관계자는 “일본 금융당국은 2015년 도시바 분식회계 사건에 연루된 회계법인 ‘EY신일본’에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신규 계약 체결 기간은 피해 징계를 적용했다”며 “기업과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정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시진·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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