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며 벌레며 그 모양 너무 닮아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교묘할꼬 그 그림 모사하여 대전(大殿) 안에 병풍 쳤네.…채색만을 쓴 것이라 한결 더 아름다워. 그 무슨 법인가 무골법이 이것이네.”
조선의 19대 임금 숙종(1661~1720)이 그림 때문에, 그것도 원본이 아니라 빌려다 모사(똑같이 베껴 그리기)한 것을 곁에 둔 것만으로도 들떠 1715년 여름 이같이 적었다. 그 주인공은 조선의 여류화가 겸 문인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1504~1551)이다. 조선 후기 문인 송상기는 1713년에 적은 ‘사임당화첩발’에서 “일가 한 분이 말하기를 ‘집에 율곡 선생 어머님이 그린 풀벌레 그림 한 폭이 있는데 여름철이 되어 마당 가운데 내어다 볕을 쬐자니 닭이 와서 쪼아 종이가 뚫어졌다’라는 것”이라며 신화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이 같은 신사임당의 명성을 원작으로 만나볼 수 있는 ‘사임당, 그녀의 화원’ 특별전이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윤곽선 없이 채색만으로 형태를 완성한 ‘몰골법’으로 꽃과 곤충을 섬세하게 묘사한 점이 탁월하다. 닭벼슬을 닮아 ‘계관화’라 불리는 맨드라미는 자녀의 관운을 염원하고, 자식을 낳기 위해 죽음도 자처하는 사마귀 그림은 부모의 희생을 의미한다. 씨가 많아 다산을 상징하는 오이, 올챙이에서 변태하는 과정 때문에 상서로운 동물로 꼽히는 개구리도 흥미롭게 표현돼 있다. 검은 감지에 그려 채색이 돋보이는 작품을 비롯해 초충도만 14점이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신사임당은 규방 여인들이 즐겨 그린 화훼화·초충도 뿐 아니라 산수화 실력도 뛰어났다. 고연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저서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에서 이이가 어머니 신사임당의 행적을 기록한 ‘선비행장’에 “평소에 묵적이 뛰어났는데 7세 때 안견의 그림을 모방해 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했다. 또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흉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썼다고 했다. ‘선비행장’에는 ‘초충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고 연구교수는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가 산수화와 포도도에서 초충도로 변한 시점을 율곡의 제자인 우암 송시열의 사망 직후인 18세기 전반으로 추정했다. 송시열은 승려가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위작’이라 선포했고 초충도를 집중적으로 칭송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암은 신사임당을 풀과 벌레 같은 미물도 사랑하는 인자한 어머니로 규정했다”고 주장한다. 서울미술관 측도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이라는 점, 현장 사생의 결과인 산수화와 달리 초충도 등은 부녀자가 안뜰에서도 그릴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성리학의 대부 율곡 이이의 추종자들이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초충도만 부각시켰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되짚어 보면 한국은행도 신사임당을 5만원권 지폐 도안 인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양성평등 제고’ 외에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를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전시에는 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이 지난 2007년에 소장한 신사임당의 ‘묵란도’ 1점이 처음 공개됐다. 2005년 KBS ‘TV쇼 진품명품’에 처음 선보여 당시 감정단에 의해 1억5,000만원 상당의 가치가 매겨진 것을, 안 회장이 소장가를 찾아내 3억원을 주고 품에 안은 그림이다. 개관 5주년 특별전으로 오는 6월11일까지 열린다. (02)395-0100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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