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밤 중국에서는 강연 프로그램 ‘시대의 친구(時間的朋友)’가 동시간 TV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중국의 유명인사 뤄전위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주목할 만한 경제·산업·사회 분야의 이슈를 정리하고 미래를 전망해주는 강연이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예능 프로그램보다 높은 인기를 끌었다. 뤄전위는 이 토크쇼 20년치 티켓을 장당 4만 위안(한화 670만원)에 판매했는데 순식간에 매진됐다. 공무원 덩지아위(34)씨는 “뤄전위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오디오콘텐츠도 나오자마자 400만∼500만명이 듣는다”며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의 시각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명사의 폭이 넓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타인의 시각이나 경험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로 지식·경험 및 감성분야의 유료콘텐츠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은 ‘구글링(정보 검색)’으로 누구나 찾아낼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나만의 관심사에 맞는 깊이 있고 참신한 콘텐츠를 원한다. 전통적인 출판시장은 침체되는 상황에서 주문형 제작(POD) 콘텐츠 등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서비스를 운영하는 콘텐츠 퍼블리싱 스타트업 ‘퍼블리’는 어떤 저자가 어떤 주제의 디지털 리포트를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내걸고 선주문을 받는다. 일본 도쿄에서 사업 기획을 모색하는 ‘퇴사 준비생의 도쿄’, ‘세계가전박람회(CES)를 가다’ 등 주제로 경제·경영·IT·교육의 가장 최신의 트렌드나 시각을 담는 게 주류를 이룬다. 리포트‘ 하나 당 책 두세권 비용(3∼4만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용료를 내면 간접경험과 통찰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전문성이 높은 저자가 나만을 위한 연구자가 돼 제안을 해주는 느낌을 받는다는 게 이용자들의 평가다. 최근 주문을 진행한 ‘데이터 사이언스로 행동하라’ 디지털 리포트는 본래 예상보다 10배가 넘는 1,100만원을 모았다. 특히 지난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발간한 인공지능(AI) 관련 보고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리포트에는 공무원, 대기업 직원 등 다양한 직업군이 지갑을 열었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저자만이 가진 뷰포인트(시각)이 상품이 될 수 있다”며 “객관성이 높거나 범용성을 갖춘 정보 대신 저자가 주관적인 콘텐츠를 쓰는 걸 장려한다”고 말했다.
시각이 들어가면 기존 제품에도 기꺼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큐레이션 책방 ‘사적인 서점’은 의사가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성향, 관심사, 고민에 따라 책을 처방해준다. 처방을 받으면 일반 책을 서너 권 살 수 있는 5만원을 내지만 소비자들은 지갑을 연다. 책을 받아보면서 추천 이유, 중요한 글귀가 담긴 편지를 받으며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민 서울대 벤처융합학과 교수는 “온라인이나 미디어로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보가 아니라 타인의 경험이나 지식의 에센스(본질)을 취할 수 있다면 지불 의지는 높아진다”며 “현재는 전문적인 지식에 수요가 높지만 여행, 취미 등 라이프스타일이나 마니아적인 정보에도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그는 “이용자들의 고급 정보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면서 유료 콘텐츠의 가격에 대한 민감성은 더욱 커져 독창적이거나 프리미엄 콘텐츠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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