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석유제품 가격을 지목하면서 정유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정권 교체 시기를 앞두고 정부가 인위적인 시장 개입에 들어갈 경우 경영에 막대한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유사들에는 이미 뼈아픈 경험도 있다. 지난 2011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름값이 이상하다”고 발언한 뒤 정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전방위 석유제품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섰다. 정유 4사는 석 달 뒤인 같은 해 4월 결국 백기를 들고 휘발유 등 기름값을 ℓ당 100원씩 인하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8일 “당시 기름값을 내리면서 한 정유사는 한 달 동안에만 3,0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냈다”며 “정유사들이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부터 주유소 현장 지도에 나서는 한편 오는 16일 석유업계 경영진을 불러 석유제품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주문할 예정이다. 사실상 우회압박에 나서는 모양새다.
정유업계에서는 대증요법 대신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기름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1.5%에 달해 미국(20.9%)이나 일본(52.9%)보다 높은데 세금 구조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정유사들을 압박해봐야 일회성 대책에 그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 유가 등락은 사실상 휘발유 및 경유 소매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유류세를 시장 원리에 맞게 손질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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