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해 산모로부터 제대혈(탯줄혈액)을 받아 보관하는 제대혈은행에 대한 갖가지 관리부실 문제가 수년 전부터 수면 위에 떠올랐지만 보건당국의 적절한 대책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차병원 일가의 불법 제대혈 줄기세포 제조·유통 사건 등이 벌어진 것은 보건당국의 이 같은 온정적 관리·감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새누리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제대혈관리업무 심사평가 최종 결과’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2013년과 2015년 전체 제대혈은행을 대상으로 업무 평가를 했다. 평가는 2011년 제정된 제대혈관리법에 따라 △인력·시설·장비 적절성 △제대혈 관리업무 처리 절차 적절성 △품질관리·안전성 적절성을 심사해 제대혈은행을 ‘적합’ 또는 ‘부적합’으로 나누는 것이다.
2013년 1차 평가에서 16개 제대혈은행 중 8개가 위탁동의서 미비, 품질관리 체계 미흡, 의료책임자 비상근, 제대혈 폐기사항 미기록, 제대혈 감염성 질환 검사 미실시, 만기 제대혈 미폐기 등의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2016년 1차 평가에서도 17개 은행 중 7개가 가족제대혈 미폐기, 장비점검 미준수, 인력 기준 미충족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두 차례 1차 심사에서 모두 부적합 판정이 나온 제대혈은행도 5개에 달했다.
하지만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1차 평가에서 나온 미비점을 고치도록 한 후 재평가를 시행해 2013년 모든 제대혈은행에 적합 판정을 내렸고 2015년에는 재심사를 신청하지 않은 1곳을 제외하고 모두 적합 판정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제대혈은행 시장이 아직 크지 않아 징벌적인 지도 감독보다는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제대혈은행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고 드러난 것에 이어 제대혈로 줄기세포를 불법 제조해 유통한 사건 등이 벌어져 경찰에 검거된 사건 등이 벌어졌는데도 복지부가 종합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지난해 3월 불법 제대혈이 노화방지 등의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H제대혈은행 대표 등 관련자 26명을 입건했으며 12월 차병원 제대혈은행이 산모가 기증한 제대혈을 차광렬 총괄회장과 부인, 부친 등 오너 일가에 미용·노화방지용으로 불법 공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의원은 “복지부가 그간 제대혈 부실 관리를 묵인한 것과 다름없다”며 “제대혈 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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