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났네.”
발이 하나 혹은 둘 셋 뿐인 목재는 의자도 탁자도 될 수가 없다. 이 낭패 난 물건들을, 마치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성냥개비를 차곡차곡 쌓는 심정으로 겹겹이 포개 올렸다. ‘모자란’ 물건들은 서로에게 기대서야만 세워질 수 있다. 위태로운 쌓기 작업은 4m 천장까지 닿았다. 백현주 작가의 설치작품 ‘낭패’다. 종로구 북촌로 갤러리아라리오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 그는 개막일에 이 ‘낭패’를 무너뜨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낭패’는 뒷다리가 없는 낭(狼)과 앞다리가 없는 패(狽)라는 이리가 서로 공생하고 기생하며 지낸다는 중국 고사 속 상상의 동물이다. 이 둘의 마음이 맞지 않아 떨어진 순간을 우리는 ‘낭패를 보았다’고 말한다. 백 작가의 작품 ‘낭패’는 그 이름을 빌어 “개인의 합의점을 연결짓는 상황과 나아가 집단의 연결구조”를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와르르 무너져 내린 구조물이 그대로 놓여 있다. 그 옆에 헬멧과 테이프, 공구 등이 나란히 마련돼 있다. 관객은 이들 장비를 이용해 무너진 ‘낭패’를 자유롭게 다시 쌓을 수 있다. “관객 스스로가 다른 관객의 낭과 패가 되는 현장이 계속”되게 한 작가의 의도다. 결국 작품은 작가와 관람객의 ‘공동작’이 될 예정이다.
전시장 1층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사람들의 상반신 영상이 설치돼 있다. 표정은 어색하고 움직임은 끌려가는 것처럼 불편하다. 지하로 내려가면 천장에 바짝 붙은 이들의 하반신 영상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발 하나씩을 묶은 ‘2인 3각’의 장면이다. 서로를 의지하고 몸을 맞대 살아가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작가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백현주라는 작곡가를 찾아가 그의 지도로 노래를 배우는 과정을 담은 ‘함께 부르는 노래’의 영상은 밋밋하고 우습지만 감동을 전한다.
입구에 놓인 반듯한 서체의 입간판과 팻말도 작품이다. ‘인생에 태여나서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사회에 배려하고 착하게 살아간다’는 문구는 오자까지 자연스럽게 읽힐 정도로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피상적으로 겉돈다. 작가는 로얄멜버른 공과대학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글라스고 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석사를 졸업한 재원이다. 전시는 2월26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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