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 때 원오극근 선사가 수행자를 위해 만든 100칙 가운데 하나인 ‘벽암록’이라는 지침서에 ‘줄탁동시’라는 말이 나온다. 병아리가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안에서 열심히 알을 쪼아댈 때 바깥에서는 어미 닭이 알을 쪼아준다는 고사성어다. ‘안’과 ‘밖’에서 함께해야 일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는 식품산업계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자되는 얘기다. 최근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줄탁동시처럼 산업 육성 입장인 ‘식품 진흥’과 규제 성격인 ‘식품 안전’ 기능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현 정부는 통합보다 식품산업의 진흥과 규제의 분리를 선택했다. 식품산업 진흥 업무는 농림축산식품부에, 규제 업무는 국무총리실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권을 줬다.
4년이 지난 지금. 식품산업을 키워야 하는 농식품부의 입장과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식약처의 논리가 맞서 식품산업 발전에 진척이 없다. 식품산업이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 현 정부 출발 후 제자리걸음이다. 이웃 나라 일본이 12%, 미국이 18%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 식품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일원화한다면 식품산업 규모를 더 키워 경제적 유발 효과를 증대할 여지가 충분하다.
안전관리 정책이 산업을 보호하는 ‘포지티브식 예방’보다 ‘네거티브식 단속’ 위주인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기능성 식품의 경우 의약품에 가까운 규제로 높은 성장성에도 답보상태다. 미국 34%, 서유럽 15%, 일본은 10%인 데 반해 한국은 1.5%에 머물고 있다.
물론 산업진흥 부처에서 규제까지 담당하면 느슨한 규제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맞는 얘기다. 국민 건강을 위한 안전 관리에 치중하는 식약처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식품업계가 이미 안전 관리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라도 한 번 터지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해 생산단계부터 안전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런데 진흥과 규제 부처가 분리된 탓에 양쪽을 상대해야 해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자. 식품 진흥과 안전 관리를 일원화해 농업·식품 부처로 통합하고 의약품은 분리하는 추세다. 캐나다는 식품 안전 관리를 농업농식품부의 식품검사청이, 덴마크는 식품농수산부의 수의식품청이, 독일은 소비자식품농업부의 소비자보호식품안전청이, 스웨덴은 소비자보호농업식품부의 식품청이 맡는다. 의약품은 분리해 관리한다.
차기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다시 식품 진흥과 안전 관리 업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를 분리해 보건 파트를 독립시켜 질병관리본부·식약처 등을 합친 보건청을 설립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식약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모델로 삼았다. 식품 강국인 유럽이 미국과 다른 체제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참에 융복합시대에 걸맞게 식품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통합하고 의약품은 보건으로 묶는 프레임으로 시너지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보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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