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공연장에서 기둥에 가려진 구석진 좌석은 흔히 ‘비추(추천하지 않음)’ 자리다. 무대 위 소리가 기둥에 가로막히며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그런 불편함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음향 투명망토를 기둥에 씌우기만 하면 기둥이 없는 것처럼 소리가 퍼져 나갈 수 있다. 음향 투명망토를 구현해낸 기술이 바로 ‘만능형 메타물질’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 3월 수상자로 선정된 박남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파동 에너지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만능형 메타물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메타물질이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물질로 굴절값·밀도값·탄성률 등이 음(-)인 특성을 가진다. 빛·전자파·음파 등 파동 에너지를 제어하기 때문에 전자파를 차단하거나 숨길 수도 있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21세기 10대 과학적 성과로 메타물질을 활용한 렌즈를 꼽을 만큼 세계적으로 관심이 뜨겁다.
메타물질이라는 개념이 처음 공론화된 것은 불과 10여년 전인 지난 2006년이다. 당시 존 펜드리 영국 임피리얼대 물리학과 교수가 메타물질을 이용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문제는 기존 기술로는 원하는 방식으로 특이한 성질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메타물질로 은폐하거나 차단하려는 물질의 모양이나 구조에 변형이 생기면 기술 적용 자체가 어려워진다. 다양한 모양의 사물에 씌우면 투명망토의 기능이 유지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박 교수팀은 탄성값과 밀도 등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메타원자’를 제작해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했다.
밀도나 탄성값 등을 하나씩 조절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원하는 결과를 위해 밀도와 탄성값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교수는 “기존 방식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어디까지 원자들을 ‘튜닝’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이제 원하는 결과를 위해 어떤 구조, 어떤 값을 가져야 할지 설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규칙 없이 무질서하게 파동 에너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냈다. 이 원리를 메타물질에 적용하면 메타물질의 복잡한 구조에서도 질서를 찾아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큰 지역에만 설립할 수 있었던 조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메타물질을 통해 잔잔한 파도를 한군데로 몰아 낙차를 크게 만든 후 터빈을 돌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느 해변에서도 조력발전이 가능하다.
배율이 높아져도 굴곡이 생기지 않는 고배율 광학렌즈를 만들 수도 있다. 기존에 카메라나 현미경 등에 사용되는 렌즈는 배율이 높을수록 굴곡이 심해져 왜곡이 발생했다. 잠수함에 음향 투명망토를 덧입히면 위치파악이 불가능한 ‘스텔스형’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 군사 전문가들이 만능형 메타물질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