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순도 쇳물을 뽑아낼 수 있는 ‘고로(高爐·용광로)’ 확보는 철강사들의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동국제강도 1954년 창립부터 고로의 꿈을 꿔왔다. 그리고 창립 63년 만인 올해 그 꿈을 이뤘다. 고(故) 장경호 창업주-장상태 명예회장-장세주 회장·장세욱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쳐 무르익은 꿈이다.
22일 동국제강 충남 당진공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6월 화입(火入·고로에 불씨를 넣는 것)해 쇳물 생산을 시작한 브라질 CSP 제철소에서 만든 슬라브(쇳물을 식혀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철강 반제품)를 처음 들여오는 입고식이 마련된 것.
브라질 CSP 제철소는 동국제강과 포스코, 브라질 최대 자원회사인 발레(Vale)가 3대2대5의 비율로 세운 합작사다. 축구장 1,372개 면적(990㏊)에 연산 300만톤의 쇳물을 생산할 수 있는 제철소로, 동국제강이 2005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기획을 총괄했다. 고로 건설 경험이 많은 포스코가 기술 자문 등을 맡았고, 발레는 쇳물의 원재료가 되는 철광석을 공급한다. 이번에 당진공장에 들어온 총 5만8,751톤의 슬라브는 지난 1월28일 브라질을 출발해 49일 동안 1만9,738㎞의 바닷길을 헤쳐왔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베네수엘라와 캐나다, 미국에 고로 건설을 검토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면서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으로 브라질 CSP 프로젝트에 도전했고 글로벌 철강 벨트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슬라브는 압연 공정 등을 거쳐 후판과 열연 강판 등의 철강재로 재가공되는 반제품이다. 국내 철강업체 가운데 자체 고로를 보유해 슬라브를 만들 수 있는 곳은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뿐이다. 동국제강은 이 때문에 지금까지 슬라브 전량을 국내외 고로사들로부터 조달해 왔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슬라브 전량을 외부에서 들여오면서 말 못할 설움을 많이 겪었다”면서 “이제는 당당하게 자체적으로 슬라브를 조달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동국제강은 CSP 제철소에서 연간 생산되는 300만톤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0만톤의 물량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100만톤은 외부로 판매하고, 60만톤은 당진공장으로 들여와 고급 후판(주로 선박용으로 쓰이는 두께 6㎜ 이상 철판)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대식 동국제강 후판 영업담당 이사는 “이미 상업 생산된 슬라브 가운데 일부는 브라질 현지에서 곧바로 외부로 판매돼 수익을 내고 있다”면서 “CSP 제철소가 수익 개선에 빠르게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장 부회장은 CSP 제철소에 추가로 고로를 짓거나 열연·냉연 등 하부 공정을 구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추가로 지을 수 있는 부지는 확보돼 있지만 철강 업종이 공급 과잉인 상황에서 아직 추가 투자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당진=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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