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학회와 한국경제학회가 23일 개최한 시국토론회에서 석학들은 하나같이 “한국 사회와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대통령 파면에 따른 극심한 정치 불안에 이어 낡은 성장동력과 고령화로 갈수록 힘을 잃는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우리와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한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두고 전방위적인 무역보복에 나서고 있는 것과 최대 우방인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보호무역의 칼날을 우리나라에도 빼 들 채비를 하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석학들은 덫에 빠진 한국을 끌어올릴 차기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실현 불가능한 설익은 공약을 가장 걱정했다.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지는 조기 대선으로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없이 취임 즉시 임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국정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우려다. 취임 이후 곧바로 실행할 액션 플랜이 있어야 하는데 비현실적인 공약만 대거 풀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는 “주요 대통령 후보들은 선거 기간에 집권할 경우 즉시 시행할 ‘경제혁신 100일 플랜’을 제시할 것을 제안한다”며 “공약이 너무 많을 필요도 없이 핵심 공약 20개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이 단기·장기 모두 절대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누가 정권을 잡든지 곧바로 실행에 옮길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와 함께 이 플랜을 실천할 것인지 경제사회 정책을 담당할 주요 인사를 공개하고 재원 확보 방안도 제시하라고 강조했다.
국가 시스템을 뒤엎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일갈도 나왔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는 “공공부문이나 공기업은 강력한 노조가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자나 기관장을 압박하고 선거에 직면한 정치권은 선심성 복지 확대 등을 앞세우며 장기적 비전은 외면하고 있다”며 “경제변혁기의 큰 파고를 넘으려면 수명을 다한 경제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복지 재정 체계는 지속가능성에 맞추고 기업의 성장과 활성화를 촉진하는 경제운영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설정해야 한다”며 “고용과 투자의 선순환구조 약화, 저출산 고령화, 포퓰리즘 등이 만연한 현실을 넘어 우리가 가진 우수한 인적자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첨단제조업, 성장 산업화된 서비스업, 동북아 가치사슬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해나가면서 중장기적 보편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국민적 합의와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안한 국제 상황에 대한 엄중한 조언도 잇따랐다. 트럼프 취임 이후 북한이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며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용호 연세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등 여러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한다”며 “김정은의 북한이 예상범위를 상향하는 위험부담 의지를 보일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 위기에 대한 통렬한 지적도 있었다. 외교 관례상 사드 배치를 대외적으로 결정한 후 중국과 추가 협의를 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것이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는 “사드 배치로 인해 초래될 중국과의 갈등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하기까지 했다”며 “우리 외교는 국제정치에서 진행되는 구조적 변화라는 중대한 흐름을 무시하거나 무감각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드 사태는 한국이 미중 경쟁이라는 강대국 국제 정치 소용돌이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약화시킨 것”이라며 “외교의 역할과 지위를 시급하게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두원 연세대 교수는 “지나치게 높은 한국의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구장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보호무역주의과 관련해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우리 정부가 호주·캐나다 등 중견국들과 함께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맞서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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