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하위 20%의 실질소득이 20만 원 늘어날 때 상위 20%는 180만 원이나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0일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이 발간한 ‘소득분위별 실질구매력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하위 20%(1분위)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123만원에서 지난해 143만원으로 13년간 20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상위 20%(5분위)는 646만원에서 825만원으로 179만원 증가했다. 증감률은 1분위가 16.3%인데 반해 5분위는 27.7%였다. 보고서는 “13년간 1분위와 5분위의 실질구매력 격차가 10% 이상 확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질소득은 명목소득을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나눠서 구했다.
시기별로 보면 금융위기 이전에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이후 비슷한 흐름을 유지했다. 2003~2008년 중 1분위 실질소득은 연평균 0.41%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5분위는 3.28%나 불어났다. 금융위기 기간을 제외한 2011~2016년 중 실질소득은 1분위와 5분위 모두 1.63%를 기록하며 유사한 상승률을 보였다.
천 연구위원은 “소득계층별 물가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큰 차이가 없었던 반면 소득 증감률에서 차이를 보여 실질소득 격차가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2003년 이후 소득계층별 주요 지출품목에 가중치를 둬 물가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1분위의 13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2.26%였고 5분위도 2.22%로 비슷했다.
그러나 소득 증가속도에서 차이가 났다. 보고서는 1분위 실질 근로소득은 정체된 반면 5분위는 꾸준히 늘어난 것이 격차 확대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1분위를 연령 별로 보면 60대 이상 가구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이들은 은퇴로 근로소득이 감소한 대표적 계층이다. 결국 60대 이상 가구가 1분위 소득 증가세를 억제해 전체 소득격차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가격이 급등한 물건의 인위적인 가격 안정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계란 등의 물가가 급등하면 정부는 공급 물량을 확대해 가격 안정에 나선다. 이런 정책이 불가피하긴 하지만 오히려 경제 전체의 자원배분을 왜곡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천 연구위원은 “고령층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득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근로빈곤층의 소득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근로장려금(EITC) 제도를 질적·양적으로 보완하는 가운데 고령층을 포함한 근로능력자의 취업능력 제고를 위해 직업 알선 및 훈련 등의 간접적인 지원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강화해 소득불균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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