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NHN은 게임사업 인적분할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 합병 이후 13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이해진 NHN 창업자와 이준호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헤어지면서 경쟁상대가 됐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누면서 네이버 출신이 NHN엔터테인먼트(181710)를, 한게임 출신이 네이버를 택한 경우도 있어 친정에 칼을 겨누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두 대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신사협정을 맺었다. ‘향후 3년간 서로의 사업영역을 넘보지 않는다’는 일종의 구두협약을 맺은 것이다.
이준호 현 NHN엔터 회장에게는 다소 불리한 조항이었다. 검색 전문업체인 서치솔루션의 창업자이자 국내 최고 검색전문가가 본업인 포털에 발을 디딜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약속한 3년이 지났다. 이준호 회장의 발목을 잡았던 족쇄가 풀리면서 본격적인 날갯짓이 시작됐다. 그 선봉은 간편결제 서비스인 ‘페이코’다.
페이코는 지난 1일 ‘NHN페이코’라는 별도 법인으로 출범한 후 시장장악을 위한 본격 시동을 걸었다. 성장에 대한 자신감도 상당하다. 지난 2015년 8월 출시 후 1년 5개월 만에 누적 결제액 1조 원을 넘었다. 올해는 연간 거래액 2조 원 돌파도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페이코를 통한 월 거래액은 1,400억원으로 업계 1위 사업자인 네이버페이를 바짝 뒤쫓고 있다.
페이코의 강점은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등과 달리 특정 플랫폼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지급결제업체(PG)나 카드사 등은 네이버나 카카오톡과 같은 플랫폼을 가진 사업자와 제휴할 경우 ‘서비스 종속’ 가능성 때문에 제휴를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페이코의 제휴 금융기관은 국내 최대규모인 20개다. 플랫폼이 없다는 단점을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바꾼 역발상 경영의 성과다.
최근 모바일 광고 업체인 애드립을 인수하는 등 이용자의 결제 행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광고 사업도 꿈꾸고 있다. 실제 간편 결제 서비스의 경우 사업자에게 받는 수수료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글로벌 업체들도 소비 행태 관련 빅데이터 확보에 주력한다. 이 회장이 검색의 전문가인 만큼 페이코에 검색 기능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페이코의 벤치마킹 상대는 미국 최대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팔이다. 페이팔은 지난 2014년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에서 분사한 후 현재 시가총액이 527억 달러로 이베이(349억달러)를 뛰어넘었다. 실제 이준호 회장과 정연훈 페이코 대표는 사석에서 “10년 안에 페이코를 시총 5조원 짜리 회사로 만들자”는 얘기를 나눌 정도로 페이코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텐센트 등 글로벌 업체가 지분 투자를 직간접적으로 타진하는 등 해외에서도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다.
영업손실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나오지만 분사 전 세워놓은 전략적 투자자(SI) 유치 계획 등으로 실탄은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NHN엔터 관계자는 “플랫폼에 준하는 인프라를 갖춘 지금부터가 페이코의 시작”이라며 “법인 출범을 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결제 사업을 가속화 하는 등 본격적인 레이스를 펼치겠다”고 자신했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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