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이 역사적 고점 앞에서 또 한 번 ‘펀드 매물벽’과 맞닥뜨렸다. 지난 6년간 박스권 장세를 거치면서 형성된 학습효과로 지수 상단이 높아질 때마다 주식형 펀드의 환매 압력이 거세지는 현상이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상승장을 이끌고 있는 외국인이 단기 투자 성격이 강한 유럽계인 상황에서 코스피가 펀드 매물 벽을 넘지 못할 경우 상승 탄력이 둔화되며 박스권의 상단만 높일 뿐이라는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코스피가 6년 만에 2,200선을 넘으며 사상 최고치 탈환에 나서자 한동안 잠잠했던 주식형 펀드 환매 물량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이 상승하자 차익실현과 원금회수를 위해 자산운용사에 펀드 환매를 요구하고 국내 주식시장에서 투신권의 순매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0.07%(1.62포인트) 오른 2,209.46에 장을 마감하며 사흘 연속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지만 사상 최고치의 벽을 두들길 정도로 강한 상승탄력을 받지는 못했다. 이달 초부터 코스피가 조정을 겪으며 2,130~2,150포인트를 오가자 순매수로 돌아섰던 투신은 코스피가 상승세를 재가동한 24일부터 다시 순매도 금액을 늘리고 있다. 코스피가 지난 2011년 5월3일 이후 6년 만에 2,210선을 돌파한 26일 투신은 834억원어치를 내다 팔았고 이날도 839억원을 순매도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매크로팀장은 “코스피가 2,100을 넘어서면서 주식형 펀드 개인 투자자들이 기대수익이 낮아져 펀드를 환매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실제 올 들어 코스피지수가 크게 오를 때마다 펀드 환매 압력에 시달린 투신은 물량을 대거 쏟아냈다. 서울경제신문이 연초 이후 코스피 상승기를 세 구간으로 나눠 살펴본 결과 투신은 1차 상승기(2월17~2월22일)에 2,672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코스피는 1년 7개월 만에 2,100선을 넘어서며 박스권 돌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투신은 펀드 환매가 몰리면서 주식을 팔아야 했다. 투신은 2차 상승기(3월13~3월23일)에도 7,434억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코스피가 5년 8개월 만에 장중 2,180선을 돌파한 3월21일 958억원을 순매도한 데 이어 22일에도 1,174억원을 팔아치웠다. 코스피가 박스피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주식형 펀드 환매 행렬이 이어졌고 지수 추가 상승을 번번이 가로막은 셈이다.
시장은 최근 높아진 펀드 환매 압력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 단기 성향의 유럽계인 점을 고려하면 투신권의 매매 방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박형중 대신증권 마켓전략실장은 “수급 측면에서 펀드 환매 속에 외국인 순매수 강도가 둔화되면 2·4분기에 코스피는 하락 변동성이 커져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 등 1·4분기 어닝시즌 기업들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면서 여전히 연내 코스피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빼면 확실한 수급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펀드 환매 압력이 진정돼야 상승장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펀드 환매가 시장이 박스권 탈출을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일 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박종학 베어링자산운용 CIO는 “2007년부터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있다 보니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워 할 수 있지만 과거 펀드 자금 유입을 보면 시장 움직임에 후행해왔다”며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넘어 조금 더 올라가면 펀드 자금도 뒤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유주희기자 ingagh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