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야 어쨌든 간에 열심히 바이크를 타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울프클래식으로 다닌 킬로수가 6,000㎞도 못 되는데 새로 뽑은 가와사키 W800은 두 달만에 2,000㎞를 넘겼으니까요. 제 기준으론 이 정도면 엄청나게 바이크로 쏘다니는 셈입니다. 신차 출고 당일 길들이기(1,000㎞)를 끝낸다는 분들도 계시지만요(…).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 4월 초 제주도로 갑니다. 당시 W800을 어떻게 능숙하게 탈까 불철주야 고민하던 저는 문득 제주도에서 바이크를 타봐야겠다던 과거의 다짐을 떠올렸습니다. 네, 아무런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바이크 생각만 하다 또 다른 바이크 탈 건수를 만든 것뿐이죠(흐뭇). 게다가 날도 따뜻해지고 사드 이슈로 제주도도 한적하겠다, 저는 곧바로 다음 주의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미리미리 렌트 바이크 예약. 제주도엔 바이크 렌트샵이 곳곳에 있습니다. 스쿠터 위주로 렌트가 가능하죠. 벤리가 주력 기종인 곳도 봤습니다. 저는 50cc 스쿠터부터 혼다 CBR, 야마하 R3, CBR1000RR, 할리 883아이언, BMW F800S까지 다양한 기종을 갖춘 렌트샵을 택했습니다. 애초부터 스쿠터를 빌릴 계획이었지만 왠지 선택의 폭이 다양한 게 조크든요.
그리고 드디어 제주도행. 헬멧과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영화 ‘시’에서 뵈었던 배우 윤정희 선생님이 남편인 백건우 선생님과 함께 같은 비행기(지만 비즈니스 클래스시라능)에 타셨더군요. 혹시 방해가 될까 싶어 멀찌감치서 목례로만 인사드렸더니 예의 우아한 미소로 받아주셔서 참 반가웠습니다. 저는 그 분이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혔던 1960년대의 작품에 대해선 모르지만 ‘시’에서도 그렇고, 종종 눈에 띄는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참 맑은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주공항에서 택시로 5분 거리의 바이크샵으로 이동합니다. 원래 바이크를 예약하면 사장님께서 공항까지 차를 몰고 나오시는데 살짝 다치시는 바람에 이 날은 못 나오셨습니다.
사장님이 안 계신 대신 가게를 지키고 있는 분은 오프로드광이자 유라시아 바이크 횡단을 준비 중인 바이크 덕후 직원분이셨습니다. 심하게(?!) 바이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지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2박 3일을 책임질 바이크는 SYM의 카빙 125. 검은색 차체에 갈색 시트로 시크한 분위기를 내는 녀석입니다.
바이크로 2박 3일을 다니기 위해 짐은 미리 사이드백에 꽉꽉 채워왔더랬죠. 사이드백을 렌트 스쿠터 양 옆에 단단히 고정하고, 헬멧백도 그물망으로 결박(?!)합니다. 사이드백은 숙소에 놓아두고 헬멧백은 바이크에 매달아놓은 채로 충전기, 음료수 등등 잡다한 물건을 담아다니는 데 잘 썼습니다.
렌트한 스쿠터의 상태는 그닥 좋진 않습니다. 잘 나가지도 않고 잘 멈추지도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타기도 하고 개중에는 마구 타는 분들도 있었겠죠. 곳곳에 제꿍과 슬립의 흔적도 보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시트는 편하더군요. 하루종일 카빙을 타고 돌아다녔지만 허리가 아프다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뽈뽈거리며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리기엔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이제 바이크샵을 떠나 서쪽 해안도로로 향합니다. 반시계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돌면 마음에 드는 해변이 나타났을 때 좌회전이나 유턴 없이 쓱 들어가기 편하죠.
첫 번째 방문지는 용두암. 별 건 없지만 일단 왔으니 가까운 바다부터 봐야겠다 싶어 들른 곳입니다. 가끔 사용하는 사진 앱 ‘푸디’를 켰더니 지역 맞춤형 특수효과도 뜹니다. 제주도스럽고 좋아뵈길래 몇 장 찍어봤습니다.
제주도에 온 양대 목적은 스쿠터 라이딩과 맛있는 밥. 돌솥밥 매니아인지라 전복돌솥밥집을 찾아갑니다. 밥도 맛있었지만 직원분들이 엄청 친절하셔서 조금 어리둥절했습니다. 이것이 제주도의 여유인가…!
다시 해안도로를 달려 협재해변 인근의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찾아갑니다. 어디선가 이 곳의 귤아이스크림이 그렇게도 맛있더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쉽게도 4월은 아직 판매 시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라봉주스만 사들고 돌아섰는데, 그 역시 맛있긴 했습니다.
어느새 해질 시간. 노을을 바라보며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가느니 돈 좀 보태서 해외여행을 가자!”는 주의였지만 그간 제주도의 매력을 잘 몰랐던 겁니다. 맑고 투명한 바다와 느긋한 풍경과 맛집과 이태원 뺨 후려칠만큼 힙한 카페들이 곳곳에 널려있는데도요.
이튿날 아침으로는 고기국수를 흡입하고,
마침 제주도에 벚꽃이 만개할 시기인지라 벚꽃 휘날리는 도로를 달려갑니다. 해안도로도 좋지만 벚꽃 날리는 도로, 지금 생각해도 감탄사가 흘러나옵니다. 캬~~!!!
벚꽃뿐만이 아닙니다. 유채꽃도 마구 피어있습니다. 눈이 너무 호강했습니다.
둘째날에는 메타세콰이어길을 지나 성산일출봉을 멀찌감치서 눈으로만 찍고 우도에 갔습니다. 그 이야기는 제가 바빠서(음?!) 다음 편에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별로 기다려지진 않으시더라도, 다음 편에서 꼭 다시 만나요!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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