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는 국내 주력 대기업의 회사채가 해외에서는 투자부적격에 가까운 낮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신용평가사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데 비해 국내 신용평가사는 정부 지원 가능성 등을 반영해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회사채 시장에서는 “국내 대기업이 대개 글로벌 경쟁력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만큼 국내 신용평가사 역시 글로벌 눈높이에 맞는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신용평가 기준에도 신경을 써 저평가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1일 서울신용평가와 국내 회사채 시장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로부터 평균 AA+ 등급을 받고 있는 롯데쇼핑은 글로벌 신평사(무디스)에서는 BBB-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등급 단계 중 AA+는 원리금 지급능력이 우수함을 의미하며 단계가 내려갈수록 지급능력은 떨어진다. 무디스가 제시한 BBB- 등급의 경우 AA+보다 8단계 낮은 수준으로 한 단계 아래인 BB+는 투자부적격등급(투기등급)에 해당한다. 롯데쇼핑이 회사채를 발행하고 돈을 빌려갔을 때 원금을 상환할 가능성에 대해 국내 신평사는 ‘우수하다’고 평가했지만 무디스는 투자부적격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한 셈이다. 국내에서 ‘글로벌 초우량’ 평가를 받은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국내 등급은 AAA로 전체 18개 등급 중 최상위지만 무디스 기준에서는 7단계나 낮은 BBB+다. 기아자동차도 국내에서는 상위 두 번째 단계인 AA+를 받았지만 무디스 평가는 BBB+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해외 신평사가 국가 신용등급을 기준점으로 기업 평가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국가 신용등급이 AA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AA 이상의 등급을 받기 어렵다는 것. 박민식 서울신용평가 금융SF평가실 실장은 “글로벌 신평사는 기업 신용평가를 할 때 국가 신용등급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며 “현대차는 국내에서는 최대 자동차 기업이지만 국가 신용등급(AA)보다 기업 등급을 낮게 주는 해외 신평사 가이드라인 때문에 저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디스의 가이드라인과 비교해도 국내외 신용평가의 괴리가 극단적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포스코·S-OIL 등 코스피를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의 신용등급이 대부분 글로벌과 비교해 5단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국내에서는 반도체 업황 개선에 힘입어 AA- 등급을 받았지만 글로벌 기준으로는 투자부적격 수준인 BB+ 등급을 받았다. 시장 관계자들이 “국내 신평사의 평가가 지나치게 후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대해 국내의 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해외 신평사는 기업의 펀더멘털 위주로 등급을 결정하지만 우리나라는 해당 기업에 대한 환경적 요인이 평가에 반영되는 경향이 크다”며 “정부 지원이나 우호적 정책이 기업 안정성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때문에 대기업 그룹은 고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회사채 투자는 금리의 영향을 받는데 해외에서 등급이 낮아도 국내외 금리 차이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국내 신평사는 대기업 그룹 계열사의 부도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보는 ‘대마불사’에 대한 기대감이 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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