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자동차보험 갱신을 거절당했다. 보험사는 ‘정책적 이유’라는 설명만 했다. 다만 공동인수 심사 대상이라 일반 보험료가 아닌 공동인수 보험료를 내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A씨는 지난 2년간 경미한 접촉사고가 두 번 있었는데 너무 과한 처분 같아 울분이 터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보다 2배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고 겨우 갱신에 성공했다. A씨가 갱신을 거절당한 것은 가입한 이 보험사가 3년간 2회 이상의 사고만 발생해도 공동인수로 분류하는 규정 탓이다. 대부분의 손해보험사가 3년간 3회 이상으로 기준을 두는 것과 비교해 까다로운 것이다. 공동인수는 보험사가 위험률이 높은 보험계약에 대해 단독인수를 거절한 뒤 여러 보험사가 공동으로 계약을 받는 제도다.
지난 2015년 보험가격 자율화 시행 이후 자동차보험 공동인수제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손보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기준을 들이대며 비싼 보험료를 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4월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1년이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개편안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발을 뺐다. 반면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가 개선안을 만들어봐야 정작 금융위가 관심이 없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그 사이 손보사들은 2~3배 비싼 보험료 챙기며 배를 불렸다. 2013년 한 해 4만7,000건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에는 47만5,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3년 새 1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손보사들은 손해율도 떨어졌다. 2013년 12월 88.5%에서 2016년 83.0%로 감소했다. 공동인수라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떠넘긴 셈이다.
다행히 소비자 권익을 주창하는 김상조호(號) 공정거래위원회가 금융당국 대신 칼을 빼 들었다. 가입 거절에 따른 공동인수 증가의 배경에는 사전 담합이 작용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손보사들이 특정 계약에 대해 가입 거절을 하는 경위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이르면 다음달부터 현장조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손보사가 또다시 금융당국을 등에 업고 은근슬쩍 밥그릇 챙기기에 나섰다 혼쭐이 났다. 그동안 의무보험인 대인·대물 보험에 적용하던 것을 선택보험인 자차·자손 보험까지 확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공정위가 제동을 걸었다. 도덕적 해이와 자동차보험료 인상의 소지가 있어 공동인수가 불가한 예외조항을 둔 것은 담합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다.
앞마당인 금융 분야에서 드러난 부조리에 대해 금융위는 왜 답답한 제스처로 일관할까. 금융개혁과 선진화는 공정위가 하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새 정부에서 작아진 존재감·위상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무뎌진 칼날을 다시 날카롭게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hh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