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진석(32)씨는 최근 직장을 옮겼다. 이번이 세 번째다. 학창시절 내내 느린 행동에다 허술한 일 처리로 주위로부터 핀잔을 듣고는 했다. 일정 관리도 제대로 못해 지각은 물론 결석도 잦았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자주 어겨 교우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는 잦은 지각과 낮은 업무 성과로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사표를 냈고 벌써 3번이나 회사를 옮기게 되자 앞날이 두렵기만 하다.
#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김영진(28)씨는 백화점에만 가면 충동구매 욕구를 이기지 못해 수백만원씩 결제하고는 한다. 꼭 필요한 옷이나 구두가 아닌데도 매장에만 들어서면 하나라도 사야 직성이 풀린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월급이 200만원이 조금 넘는 자신의 형편에 무리한 지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지갑에 손이 가면서 카드빚이 수천만원을 넘어섰고 결국 부모님과도 불화를 겪은 후 집에서 나오게 됐다.
이들은 모두 성인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질환자다. 흔히 ADHD를 소아청소년기 질환으로 알고 있지만 ADHD로 진단받은 아동 10명 중 7명은 청소년기까지 증상이 이어진다. 또 그중 50~65%는 성인이 돼도 증상이 계속된다. 성인 ADHD는 발병 후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까지 그 증상과 기능장애가 이어지는 신경정신질환이다.
ADHD는 근본적으로 뇌 발달과 관련돼 있다. 환자 대부분이 집중력이나 업무 효율성이 떨어져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뇌의 구조와 기능을 살펴보면 정상인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ADHD 증상을 일으키는 곳은 뇌 부위 중에서도 비교적 늦게 발달하는 전전두엽 부위다. 뇌에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생성돼 뇌의 각 부위로 전달되는데 전전두엽으로 충분한 신경전달물질이 제공되지 못하면 ADHD 증상이 생기게 된다.
전전두엽 발달에 지장을 받으면 △집중력과 인지 과정에서 상위 기능 조절 △부적절한 활동을 억제하는 브레이크 기능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등에 문제가 발생한다.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았다. 다만 임신 중 혹은 출생 직후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 예컨대 태내 감염이나 뇌염처럼 뇌에 손상을 주게 되는 경우 ADHD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고 유전적 요인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DHD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 등 3대 핵심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다만 생애 주기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가령 과잉행동 경향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데 반해 충동성과 부주의 증상은 계속 나타난다. 아동기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성인 ADHD는 증상만으로 정확한 파악이 어려워 실제 치료율은 0.76%에 불과하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한데도 성인 ADHD 환자가 증상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질환도 함께 앓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ADHD가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성인 ADHD 환자의 85%가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의 기분장애, 공황장애 등의 불안장애와 알코올이나 약물 오남용 등 여러 질환을 갖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서 우울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 성인 731명을 대상으로 ‘성인 ADHD 자가 보고 척도(ASRS) 증상 체크 리스트’를 사용해 조사한 결과 대상자의 55.7%(407명)가 ADHD 환자로 의심됐을 정도로 ADHD와 다른 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공존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근본적 질환인 ADHD를 같이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성인 ADHD 환자는 학교 중퇴, 실직, 교통사고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로 성인 ADHD 환자들은 실직이나 이직 비율이 높고 자동차 사고나 이혼율 등도 일반인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대학교를 졸업하는 비율은 19%에 그친다. 상근직에 근무하는 비율도 일반인(59%)보다 낮은 34%다.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성인 역시 소아청소년과 같이 약물치료가 먼저다. 전문가들은 성인의 경우 생활습관이나 현재 증상에 따라 치료 전략이 전혀 달라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 후 자신에게 적합한 치료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약제로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콘서타OROS’, 아토목세틴 계열의 ‘스트라테라’ 등이 있다. 메틸페니데이트는 대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를 억제해 농도를 조절하고 수축된 전전두엽을 자극해 증상을 개선한다. 콘서타OROS는 1일 1회 오전에 복용하는 약제로 빠른 효과가 오랜 시간 지속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ADHD의 약물치료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지만 전문의 처방대로 용량과 용법을 지키면 오히려 ADHD로 인한 흡연이나 음주 등 물질남용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보건복지부 개정 고시에 따라 ADHD 치료제의 보험급여 적용 범위가 성인까지 확대되면서 성인 환자들도 혜택을 보게 됐다. 급여 전에는 18세 이전에 ADHD를 진단받은 환자에 한해서만 치료제의 보험급여가 적용됐지만 성인이 된 후 환자로 진단받은 경우에도 급여를 적용받게 되면서 기존 가격에 비해 24% 수준으로 비용이 줄었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