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차 업계 1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올 초 “2년 내 총 7종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국내에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단 1종의 PHEV도 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서울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S500 PHEV’는 사실상 출시 계획을 접었다. 4·4분기로 예정된 ‘더 뉴 C 350e’와 ‘더 뉴 GLC 350e’ 역시 인증이 제대로 될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6월 국내에 첫 PHEV 모델인 ‘330e’를 비롯해 ‘X5 x드라이브 40e’와 ‘뉴 740e’를 출시할 계획이었다. 친환경차 라인업을 강화해 달라진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관련 차종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증이 나오지 않아 판매를 못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에 ‘인증 포비아’가 퍼지고 있다.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여파로 디젤차에 대한 인증 작업이 강화된 데 이어 이번에는 친환경차 출시도 애를 먹고 있다. 업계에서는 인증 지연이 일종의 ‘비관세 장벽’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난해부터 수입차 업체들은 디젤차 출시는 주력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서류 검증이 두세 배 더 깐깐해지면서 인증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 업체의 디젤 차량 출시가 1년 이상 지연되는 걸 본 뒤 판매전략을 바꿔 비(非)디젤부터 인증을 먼저 받는다”고 밝혔다. 올해 6월까지 디젤차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21.7% 급감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렸다.
그런데 디젤차뿐 아니라 친환경차 인증 업무도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수입차 업계는 하소연한다. 인증이 깐깐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증이 안 나오고 있어서다. 내연기관과 모터를 함께 쓰면서 전기차처럼 충전도 할 수 있는 PHEV 모델이 대표적이다.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로 평가받지만 판매 차량은 거의 없다. 벤츠나 BMW 외에 포르쉐는 ‘신형 파나메라’ 출시 때 PHEV 차량인 ‘파나메라4 e-하이브리드’를 선보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증은 감감무소식이다. PHEV와 관련된 신차 출시가 중단되면서 판매 중인 도요타 ‘프리우스 프라임’이나 볼보의 ‘XC90 T8’는 시장이 답보 상태여서 판매가 부진하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인증 체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연비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소음과 배기가스는 환경부가 인증한다. 사후 관리는 국토교통부가 맡고 있다. 여러 기관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다 보니 업체의 애로사항이 만만찮다. 그나마 내연기관의 연비 인증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자동차부품연구원·한국석유관리원 등 시험기관이 많다. 하지만 PHEV 등 친환경차는 석유관리원이 도맡고 있다. 수입차 17개사를 모두 관리하기에는 인력이나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업계에서는 인증 지연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부터 비관세 장벽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국산 경쟁 차종이 이미 판매 중인 상황에서 수입차만 관련 차를 팔지 못하는 상황은 차별적인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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