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은 420만대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801만대로 300만대 이상 늘며 일약 글로벌 5위로 점프했다. 글로벌 자동차업계에 전무후무한 성장세였다. 비결은 수직계열화. 쇳물에서 완성차까지 그룹 내에서 모두 조달하며 최적의 시기와 가격을 제공, 효율성을 극대화한 덕분이다. 경쟁사들은 현대·기아차의 가성비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장점인 수직계열화가 발목을 잡은 것. 모기업인 현대·기아차가 흔들리자 그룹 전체의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구조적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계열사마다 그룹 의존도를 줄이고 위험 분산에 나섰지만 ‘현대차그룹’ 꼬리표가 붙어 있어 독자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메랑으로 날아온 수직계열화 전략=현대위아 -66.8%, 현대모비스 -26.4%, 현대제철 -18.8%.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2·4분기 영업이익 감소율이다. 현대·기아차는 2·4분기 중국 시장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여파로 판매가 60% 이상 급감했다. 영업이익률도 7년 만에 최저 수준인 4%대로 곤두박질쳤다. 모기업이 풍랑을 맞자 계열사들도 줄줄이 흔들리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변속기와 일부 차량 모델 엔진을 공급하는 현대위아는 2·4분기 영업이익이 301억원으로 전년 대비 66.8% 추락했다. 자동차 부품사업의 이익은 380억원으로 전년 동기(740억원) 대비 반토막이다.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현대모비스는 이날 2·4분기 영업이익이 26.4% 급감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중국 내 완성차 물량감소로 주력 분야인 모듈·핵심부품 제조사업이 타격을 받아 매출과 순익 모두 감소했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의 물류 및 자동차 반조립제품 사업을 맡은 현대글로비스는 2·4분기 매출액(4조1,889억원)이 9.1% 늘었지만 영업이익(1,816억원)은 7.5% 줄었다. 현대제철도 예외는 아니다. 철광석 등 원재료 가격 상승 여파에 중국 등 해외법인의 실적 부진이 수익을 갉아 먹었다. 현대제철의 2·4분기 영업이익(3,509억원)은 전년 대비 18.8% 감소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기아차를 정점으로 자동차 원재료인 강판부터 부품·완성차까지 모두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글로벌 자동차 회사 중 유일하게 갖췄다. 현대제철이 강판을 만들고 현대위아는 엔진과 변속기 및 차량 제작에 핵심인 금형틀을 제작한다. 현대로템은 차량 공장에 각종 시설 장비를 넣고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한다. 현대·기아차는 완성차를 만들고 현대글로비스는 글로벌 각 지역으로 수송한다. 완성차 한대를 판매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과정이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 해결되는 구조다. 하지만 수직계열화는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줄면 구조적 취약점이 바로 나타난다. 차량 판매 부진→부품 수요 감소→계열사 동반 실적 악화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현대차’ 꼬리표에 그룹 비중 줄이기도 난항=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그룹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자동차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서 과거와 같은 수직계열화 전략으로는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가 대표적이다.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 비중이 70%로 매우 높다. 최근 미국 FCA의 지프에 각종 부품을 공급하고 전장 제품 수요처를 다변화하고 있는 등 모기업 의존도 줄이기에 한창이다. 현대글로비스 역시 차량 수송 외에도 벌크선 사업에 열심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룹 비중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자동차 부문에 사업이 특화돼 있다. 하지만 ‘현대차 계열사’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관련 부품이나 재료를 거의 쓰지 않는다. 철강사나 부품사의 경우 완성차 업체와 함께 제품 개발 과정에 참여해 스펙과 출시 시기, 요구사항 등을 함께 체크한다. 경쟁사들은 각종 신차 정보가 현대차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며 꺼리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현대·기아차가 판매 대수가 아닌 브랜드 이미지 높이기에 나선 만큼 수직계열화 전략을 수정해 세계 최고의 부품 등을 가져다 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수직계열화는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국내 자동차 제조업 경쟁력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도원·한재영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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