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삼성전자가 외국인의 매물 폭탄에 휘청거렸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불기 시작한 정보기술(IT) 버블과 주식시장의 높은 밸류에이션 논란에 놀란 외국인이 삼성전자부터 차익 실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1,120원까지 떨어진 환율도 외국인의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했다. 28일 외국인은 3,1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가 3·4분기에도 견조한 실적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지만 수급의 키를 쥐고 있는 외국인의 매도공세가 장기화할 경우 삼성전자는 물론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에서 기술주에 대한 거품 논란이 한국 주식시장으로 옮겨붙을 경우 삼성전자 등 일부 종목의 상승세에 의존하던 증시가 다시 박스권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경고도 보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4.10% 급락한 238만8,000원에 장을 마감하며 6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하락 폭(4.10%)은 지난해 1월4일(-4.37%)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수치다. 이날 종가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12조364억원으로 하루 만에 13조3,282억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삼성전자가 급락하며 코스피도 전날보다 1.73% 하락한 2,400.99에 장을 마감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올 들어 가장 많은 5,633억원을 순매도하며 닷새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갔다. 기관이 4,715억원, 개인이 982억원 각각 순매수했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지수 하락을 이끈 외국인의 매물 폭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 등 시총 상위 IT 종목에 집중됐다. 간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0.39%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0.10%)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0.63%)는 하락하며 외국인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시가총액 1위·2위 종목에서만 이날 하루 순매도액(5,611억원)의 70% 이상인 4,000억원 가까운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두 종목에 외국인의 매도 공세가 이어졌지만 개인과 기관이 매물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서 지수가 하락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흔들리면서 코스닥 반도체지수 역시 4.16% 급락했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기술주 하락, 특히 반도체 관련주 약세 영향으로 한국 증시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며 “올해 들어 상승 폭이 컸던 종목을 중심으로 매물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에서 지난해 10월11일(-3,158억원) 이후 가장 많은 3,132억원어치를 팔아치웠고 SK하이닉스에서도 846억원을 순매도했다. 삼성전자는 전날 2·4분기에 영업이익·매출액·순이익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며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고 밝혔지만 미국 IT주 조정에서 화들짝 놀란 외국인의 차익 실현 욕구를 잠재우지 못했다. 3개월 일정으로 이날부터 가동을 시작한 2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도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미국 증시에서 퍼지고 있는 IT주에 대한 고평가 논란이 국내 시장에 옮겨붙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올 들어 연초 대비 삼성전자는 42.06%, SK하이닉스는 63.33% 오르며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을 2~3배 웃돌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형 IT주의 주가가 과열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글로벌 투자은행(IB)이 JP모건이다. JP모건은 지난 2월 반도체 슈퍼사이클 논쟁을 점화시킨 UBS와 한국 IT 업종에 비관적인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 시장과 IT주에 미련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파는 대신 덜 오른 LG전자를 사들였다. 또 증시 상승의 최선두주자인 미래에셋대우와 같은 증권주를 매수했다.
/서민우·박민주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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