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 불이 켜지고, 조립 라인이 기계음을 내며 돌아간다. 라인 끝에 올려진 원단이 적당한 크기로 재단되면 신발 모양의 금형 속으로 이동해 순식간에 제품이 완성된다. 라인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올해 초 가동에 들어간 독일의 아디다스 스피드팩토리의 모습이다. 독일 스포츠용품 제조업체 아디다스는 1993년 해외로 생산 라인을 모두 옮긴 지 23년 만인 지난해 9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안스바흐에 스마트 공장을 세웠다.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만드는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10명뿐이다. 맞춤형 제품 생산 기간도 기존 6주에서 5시간으로 확 줄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공장의 풍경이다. 비단 공장만이 아니다. 살고 있는 집과 자동차, 병원, 은행, 학교, 직장 등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인류는 지난 100년간 겪은 변화보다 더욱 급격하고 놀라운 변화를 향후 10~20년 사이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4차 산업혁명이 자리하고 있다.
1, 2, 3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계가 인간의 손과 발 역할을 맡았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두뇌를 기계가 대체하게 된다. 기계가 인공지능(AI)과 ICBM(IoT, Cloud, Big Data, Mobile) 등 정보기술 인프라를 통해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인지, 학습, 추론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ICBM 기술 등 지능정보기술은 특정 산업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산업 전반에 적용되면서 산업 구조의 대변혁을 촉발시킬 것이다. 수동적 대처보다는 선제적 기술 도입과 적용 등 능동적이며 공격적인 대응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간 기술 격차가 확대되고 플랫폼 선점기업의 승자 독식이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인 만큼 발 빠르게 대응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만이 유효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로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퍼스트 무버’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과감한 투자와 인수합병(M&A)은 물론 고급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정보기술(IT) 기업 역시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고 속에서 거대 플랫폼 기업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해 국내 통신사 중 처음으로 자율주행차 개발에 참여한 SK텔레콤은 인텔, BMW, 모빌아이, 엔비디아 등 자율주행기술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2021년 5G 기반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KT는 3월 강원도 평창에서 레벨 3 수준의 5G 기반 자율주행버스를 시연한 바 있으며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는 평창과 서울에서 자율주행버스를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네이버랩스는 올해 2월 국내 ICT 업계 처음으로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허가를 취득했다. 2017 서울모터쇼에서 국내 ICT 업계 최초로 자체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를 공개했으며 시장 선점을 위해 시각인지 기술과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핀테크 경쟁도 뜨겁다. 최근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는 AI 등의 기술과 금융 콘텐츠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서비스를 공동 추진하기 위해, 상호 지분을 취득했다. SK텔레콤과 삼성증권은 인공지능 음성 기반 금융 서비스를 연내 출시하기 위해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SDS·LG CNS·SK㈜ C&C 등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보안 기술로 부상하는 블록체인 시장에서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한 오는 2030년께 국내 경제 효과 430조원, 신규 매출 85조원, 비용 절감 199조원 규모의 성과를 안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는 미흡한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140여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4차 산업혁명 준비도 순위에서도 우리나라는 일본(12위)이나 대만(16위), 말레이시아(23위)보다 낮은 25위에 그치고 있다. 또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경쟁력 역시 일본(15위)과 대만(14위)에도 뒤져 주요국 가운데 19위에 불과한 실정이다. 1위는 싱가포르, 2위는 핀란드, 3위는 미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규제가 3차 산업을 성공시킨 소프트웨어·서버 중심에 머물러 있다”면서 “4차 산업은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합쳐져 있는 형태인 만큼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산업이 꽃을 피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판은 그 어떤 정의도, 미래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전략도 무의미하다”면서 “시장에서 자발적인 발현이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정부의 역할이자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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