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늘리라면서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고 비정규직은 쓰지도 말라는 발상은 어떻게 나오는 겁니까. 업계가 어려움을 토로라도 할라치면 ‘적폐’ ‘나쁜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말도 꺼내기 어려워요.”
한 대기업 임원은 문재인 정부의 기업관에 ‘선악(善惡) 논리’가 내재돼 있다고 꼬집었다. 단순히 어느 한쪽을 선, 다른 한쪽을 악으로 규정하고 밀어붙인 뒤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나쁜 기업’으로 매도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내년 16.4%, 2020년 시급 1만원), 비정규직 제로 등과 같은 정책은 기업으로서는 감내하기 버거운 조건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속도와 방향 조절이 필수다. 그런데도 기업 몰아세우기에만 급급하니 기업의 눈은 어쩔 수 없이 해외로 향한다. 최근 경방·전방 등 섬유 업체를 비롯해 통상임금 이슈로 가시방석인 자동차 관련 업체 등이 비용 부담에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검토하는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 때문에 기업의 ‘엑소더스’를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되레 기업을 나무란다.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화 등이 공장 이전의 핑계로 활용되고 있다고 언짢아하는 것이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공장을 운영하기 어렵게 만들어놓고 기업을 비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답답해했다.
세제 개편안은 기업 입장에서는 좌충우돌의 결정판에 가까웠다. 일자리를 늘린다면서 법인세를 올리고 연구개발(R&D) 등 투자 세액 공제를 줄였다. 특히 과표 구간 2,000억원 초과 129개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율 인상(3%포인트)은 투자 위축으로 일자리 확대에 역행한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실제 미국·프랑스·벨기에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법인세율이 가장 높은 국가들은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우려해 법인세를 내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법인세 인상이 재벌총수에 대한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정치권이 부추겨 단행한 징벌적 성격도 담겨 있다고 본다.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은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재판에도 투영되고 있다. 재계는 기업인들이 마치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예외가 된 듯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인이면 증거가 부실해도 강력히 처벌하는 게 정의’인 것처럼 정부가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이 때문에 임박한 이 부회장 판결이 법치주의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도 문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갑질’ 근절을 명분으로 프랜차이즈 산업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선 것은 그 실례다. 가맹점주에 대한 갑질 유형인 인테리어 시공 감리, 판매장려금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친 조사 탓에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 모두가 정부가 기업을 규제와 감시의 대상으로만 삼는 사고에서 기인하는 부작용들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시장에서 악전고투하는 기업에 이래저래 요구만 늘어놓을 뿐 정작 필요한 규제 완화 등에는 미온적이지 않느냐”며 “정부가 더 귀를 열고 산업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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