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 가족은 지난 1997년 ‘IMF 사태’ 이후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수억원의 빚을 졌다. 중견기업에 취업한 A씨는 가족과 함께 빚을 갚은 뒤 대출을 받아 서울 도봉구에 109㎡(33평)짜리 집을 얻었다. A씨 명의였지만 실제로는 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신용도가 좋은 A씨가 집을 산 것이다. 혼기가 찬 그는 지난 7월 서울 강동구에 추가로 아파트 계약을 했다.
문제는 ‘8·2 부동산 대책’이었다. 도봉구 아파트에 담보대출이 있어 새집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30%로 당초 예상보다 10%포인트 적게 적용됐다. 대출로 집을 사려고 했던 A씨는 돈이 모자라 애만 태우고 있다. 정부에서는 기존 집을 팔면 된다고 하지만 이 집을 팔면 가족들이 갈 곳이 없고 계약을 취소하면 수천만원을 날릴 처지다. 금융 당국은 LTV 초과분에 대한 신용대출도 막고 있어 남은 가족이 집을 사거나 대출을 받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A씨는 “새집은 가족이 이주하기 위한 집이 아니라 향후 결혼을 하면 살 집으로 생각했고 절대 투기 목적이 아니다”라면서 “자금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결혼 후에는) 다시 월세살이를 해야 하나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본지에 안타까운 사례 봇물
“8·2대책 소급적용 철회를”
다주택자 금융위 항의 방문
A씨처럼 8·2대책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이 22일 서울경제신문에 피해 사례를 알려왔다. 전격적인 정부의 대책 발표로 부동산 가격은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이 같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날 8·2대책 소급 적용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다주택자 20여명은 22일 금융위원회를 항의 방문하고 8·2대책 이전 아파트 분양계약분에 대한 대책 적용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금융위는 대책 발표 전에 아파트 분양계약을 했더라도 은행과 대출계약을 하지 않은 아파트 단지 소속 다주택자에게는 8·2대책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23일부터는 다주택자의 경우 전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LTV·DTI가 10%포인트씩 낮아진다. 서울과 과천·세종 등에서는 일괄적으로 40%가 적용되며 투기지역 내에서는 세대당 1건의 담보대출만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본지에 알려온 사례들을 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70대 노부부인 B씨는 몸이 불편해 6억5,700만원이라는 가격에도 중도금 60%를 해준다는 말에 고덕센트럴푸르지오에 청약을 했다. 지하철역이 가까워 생활이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주려고 사둔 집이 있던 B씨는 ‘8·2대책’으로 대출 가능금액 비율이 30%로 줄었다. 하루아침에 30%포인트에 해당하는 돈을 마련하기 힘든 B씨는 난감한 처지다. 이 때문에 원래 집은 팔려고 내놨는데 팔리지가 않는다. 업체에서는 계약금 1,000만원과 위약금을 내야 철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무주택자인 C씨는 내년 초에 입주하는 아파트 입주권을 보유한 채 6월 강동 베네루체 아파트를 새로 분양 받았다. 맞벌이 부부인 탓에 회사 통근이 편리한 곳에 대출을 받아 내년에 입주하고 2년 뒤 신규 분양아파트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규제에서 중도금과 주택담보대출을 1세대 1건만 가능하도록 해 자금조달에 차질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최소 분양 아파트 계약금의 10%를 날리게 됐다.
지난해 8월 당시 직장이 수원이었던 D씨는 배우자 명의로 동탄2 신도시 청약에 당첨됐다. 지난달에는 아이들 교육 목적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고덕센트럴푸르지오를 분양 받았다. 분양권 대출도 주택담보대출로 간주하는 탓에 D씨는 중도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 D씨는 “동탄2 분양권은 전매금지 상태로 23일부터 전매할 수 있지만 현재 거래절벽으로 매수자가 없다”며 “정부는 다주택자는 집을 팔아서 중도금을 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일반분양에 당첨된 E씨도 마찬가지다. 과거 10년 동안 지방에서 출퇴근하던 E씨는 회사 근처에 작은집을 얻었다. 이후 아이가 크고 혼자 사시는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서울에 청약을 넣었고 당첨이 됐다. 그런데 8·2대책에서 두 곳 모두가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새 아파트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해졌다. 원래 집을 팔면 된다지만 무조건 2년 내에 집이 팔릴지부터 걱정이다. 중도금을 내지 못하면 계약금 7,700만원을 잃게 된다는 게 E씨의 주장이다. /세종=김영필기자 구경우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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