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연말로 갈수록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미국의 금리 인상 스케쥴도 늦춰질 것으로 보이는데다 부동산 시장 심리도 위축된 상황이라 한은의 금리 인상 신호가 약해졌다는 평가다. 당장 31일 금리 결정을 위해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통화 긴축과 관련된 발언의 수위가 낮아질 수도 있다.
한은은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이 같은 내용의 현안보고를 했다. 한은은 우리 실물 경제에 대해 “글로벌 경기회복에 힘입어 수출과 설비 추자 호조가 이어지며 소비가 2·4분기 이후 다소 나아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추경 등으로) 2% 후반의 성장세를 이어가겠으나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관련 리스크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또는 재협상을 두고 있는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를 두고 얼어붙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에 불확실성이 짙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한은은 금리 방향을 정할 때 중요한 요인인 물가 상승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농축수산물을 중심으로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연말로 갈수록 지난해 낮았던 국제유가의 기저효과가 약화되면서 물가 상승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은 1% 중반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7월 금리를 동결하며 “근원인플레이션율이 1% 중후반을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보다 다소 후퇴한 진단이다.
또 금리 인상이 필요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부동산 시장이 정부가 내놓은 ‘8·2 부동산 대책’으로 과열이 식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주택거래량 매매지수가 지난달 말 24.9에서 이달 14일 기준 11.3까지 하락했다. 한은은 “주택전세가격이 금년 들어 입주물량 증가 등으로 공급 여건이 개선되며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8·2 대책에 따른 가격상승 기대 축소 등으로 당분간 안정세를 나타낼 전망”이라고 말했다.
1,400조원 가까이 불어난 가계부채는 여전히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91%)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7개국 72.4%)을 훨씬 웃돈다. 무엇보다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차주와 고위험가구의 부채가 늘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부동산 대책에 더해 다음 달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나오면 증가세는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체 가운데 65.5%가 고소득(소득 상위 30%), 65.7%가 고신용(1~3등급) 차주에 집중돼 가계부채 리스크가 금융시스템 전반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여기에 최근 가파르게 올랐던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도 다소 늦어질 전망이다. 지난주 열린 미국 잭슨홀 미팅에서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통화정책과 관련해 의미있는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기준금리 상단(1.25%)이 같은 한국과 미국의 금리 상황이 연내에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금리 역전으로 인한 외화가 급격히 유출될 위험은 더 낮아진다.
북한리스크와 관련해서도 “실제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낮지 않다”며 “다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을 경계하며 시장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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