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주자 산업계는 일제히 성명을 내고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법원이 이번 판결로 자동차 업계는 물론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저하될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통상임금 판결로 기아차나 현대자동차그룹은 물론 산업계 전반의 인건비가 오르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최대 3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통상임금 기업 부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한국경영자총협회는 31일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판결 직후 “기존의 노사 간 약속을 뒤집은 노조의 주장은 받아들이면서 합의를 신뢰하고 준수한 기업은 일방적인 부담과 손해를 감수하라는 판결에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면서 법원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경총은 “기아차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최대 3조원이 넘는 우발채무를 지게 돼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판결이 해당 기업은 물론 협력관계를 맺은 수많은 중소기업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 제조업 경쟁력에 미칠 여파가 매우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예측하지 못한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돼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3년 ‘통상임금 산정 범위 확대 시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정기 상여금뿐 아니라 당시 노동계가 주장한 각종 수당이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기업이 부담할 추가 비용 규모를 최대 38조5,509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일자리 창출 위축 우려=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정과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소득 주도의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은 산업계 전반을 짓누르는 통상임금 부담에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이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갈수록 악화되는 기업 경영환경에 통상임금마저 부담을 안길 경우 우리 기업의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과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이 살아남지 못하면 근로자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이 노동계의 양극화를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완성차 업체는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협력업체에 전가할 것”이라며 “중소·중견 부품 업체와의 임금 격차 확대로 대·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기준 기아차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9,600만원이다. 반면 5,300여곳에 달하는 협력업체들의 임금 평균은 5,000만원을 밑돈다.
◇노동계 “향후 판결에도 신의칙 적용 엄격해야”=경제단체들의 우려에도 노동계는 “법원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았다”면서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소송 당사자인 기아차 노조는 “법을 지키면 경영이 어렵다는 경영계의 인식이 청산돼야 할 적폐라는 노동조합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조 측 변호를 맡은 김기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원이 신의칙 법리를 엄격한 기준하에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통상임금의 법리를 바로 세운 판결”이라고 환영했고 한국노총은 “당연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6년이나 걸린 것이 비정상”이라고 강조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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