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통상임금과 관련해 이미 상반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업계 3위인 한국GM은 지난 2014년 3월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했다. 이후 한국GM은 3년간 인건비 부담이 5,000억원 가까이 급증했다. GM 본사는 한국의 인건비 부담이 너무 크고 생산성이 낮다며 추가 물량 배정을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판매 감소까지 맞물리며 누적적자는 1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한국 철수설까지 나온다.
르노삼성은 2015년 노사 대타협을 통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대신 10종의 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했다. 노사가 한발씩 양보한 것. 르노삼성의 인건비 부담이 르노그룹 내 14개국 23개 공장 중 가장 높은 점 등도 고려됐다. 이후 르노삼성은 2015년에만 약 1,168억원의 인건비 부담을 덜었다. 또 북미용 ‘로그’와 ‘QM6’의 유럽 수출물량을 늘리며 매출이 2014년 3조원대에서 지난해 6조원대로 급성장했다.
◇기아차에 ‘한국GM의 길’ 정해준 법원=자동차 업계에서는 법원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을 두고 ‘르노삼성의 길’이 아닌 ‘한국GM의 길’을 정해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완성차 공장의 생산직 급여는 고정급과 변동급으로 구성된다. 고정급은 기본급과 정기 상여금 등이 있다. 변동급에는 각종 수당과 야근이나 주말·휴일특근비 등이 포함된다. 변동급 비율은 30~40% 정도 된다. 차가 잘 팔려 물량이 늘고 주말이나 휴일에 근무를 많이 하면 생산직의 급여도 늘어난다. 기아차는 이번 통상임금 판결로 당장 1조원가량의 추가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늘어난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장을 덜 돌리거나 인력을 줄여야 한다. 주문이 몰려들어도 차량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산직 급여는 자연스럽게 줄고 사측도 차를 못 팔아 손해를 보게 된다. 노사가 모두 패배하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늘어난 비용 충당을 위해 마케팅을 줄여야 하고 연구개발(R&D)비도 삭감해야 한다. 인적투자 역시 자연스레 줄어든다. 근본 경쟁력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
기아차의 국내 생산량은 해외 3곳(미국·슬로바키아·멕시코)의 공장을 합친 것보다 많다. 전체 생산의 64%가 국내 생산이다. 국내 공장 가동을 줄이면 자연스레 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진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기아차뿐 아니라 현대자동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대차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2심까지 회사가 승소해 법적으로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는 등의 우려는 없다. 하지만 노사관계에서 기아차의 임금 상승을 두고 현대차에서 크게 반발할 수 있다. 기아차는 현대차보다 평균 근속연수가 긴 직원들이 많아 이미 평균 임금이 더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기아차의 평균임금은 9,600만원으로 현대차보다 200만원 더 많았다.
◇기아차 부담, 수천억 급증 전망=문제는 이번 소송으로 기아차의 부담금액이 향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1심 재판부는 기아차가 근로자 2만7,400여명에게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는 2008~2011년 기준 수당만 해당한다. 1심은 근로자 13명이 2011~2014년의 각종 수당도 근거가 되는 통상임금을 재산정해 추가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하고 1억2,000만여원을 지급하라고 사측에 명령했다. 다른 근로자들이 1심 판결을 근거로 추가 소송을 걸면 사측은 수천억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셈이다. 법원 관계자는 “기아차 노조는 2014년 소송에 대해 근로자 13명이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측은 그런 합의가 없었다고 반박한다”며 “사측은 합의를 인정해도 당장 수천억원을 더 부담해야 하고 인정하지 않아도 패할 가능성이 큰 소송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법원의 이번 소송이 자동차 업계 전반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도원·이종혁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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