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의 하나로 내년부터 다주택자의 경우 기존 대출을 포함해 총부채상환비율(DTI) 30%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난달 23일부터 다주택자 DTI 한도가 30%로 낮춰진데다 복수 주택담보대출의 규제를 더 강화해 다주택자는 사실상 돈을 더 빌릴 수 없게 해 투기수요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대신 정부는 가계부채 대책 발표 시기를 당초 이달 말에서 추석 연휴인 오는 10월 중순으로 늦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8·2부동산대책과 북한의 핵 도발,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에 따른 현지 국내 업체의 실적악화 등의 영향으로 실물경기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는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우선 신DTI가 내년부터 적용돼 대출 총량이 축소되고 대출 관련 절차도 까다로워진다. 현재 DTI는 ‘신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눠 계산하지만 새로운 DTI는 신규 대출은 물론 기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원금+이자)까지 모두 더해 상환액 총액이 산정된다. 이렇게 되면 기존 대출이 있을 경우 신규 대출이 가능한 금액이 줄어들거나 대출 자체가 어렵게 된다.
결국 다주택자가 전세를 끼고 집을 사 시세차익을 노리는 ‘갭 투자’는 상당 부분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다주택자는 DTI 한도가 30%로 묶이면서 추가 대출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은행들이 대출을 내줄 때 모든 금융권 대출의 원리금을 더해 대출 여부를 판단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오는 2019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또 현재 소득 등 자격 제한이 없는 ‘적격대출(9억원 이하 주택에 최대 5억원 대출 가능)’에 고소득·다주택 가구 보유자 제한 조항을 신설하고 새 아파트 값의 60%인 중도금 비중도 40%까지 끌어내려 대출 규모를 줄이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기존 8·2대책에 따라 DTI가 30%까지 내려간 다주택자에게 이중규제를 더해 대출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대출 수도꼭지를 잠글 경우 소비심리 위축, 실물경기 악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외 경기 여건이 불안정하다는 게 특히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가계부채 대책을 추석 연휴 직후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0일 “실물경기 흐름을 당분간 지켜본 뒤 추석 이후에 부채 대책을 내놓는 게 맞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도 “8·2대책으로 실물자산 시장에 한차례 충격이 있던 상황”이라며 “여기에 더해 주택담보대출을 조이는 가계부채 추가 대책이 나온 뒤 추석 연휴에 들어가면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대책이 추석 ‘대목’에 찬물을 끼얹어 유통 업계 및 자영업자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의 사드 보복이 이어지면서 현대자동차 주요 수출기업의 중국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이어 추가 고강도 도발에 나설 경우 해외 투자가 이탈 등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여기에 가계부채 대책이 자칫 국내 소비심리 위축을 이끄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실제로 8·2대책이 발표된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9.9로 전달(111.2)보다 줄며 올 들어 처음으로 회복세가 꺾였다. 백화점 및 할인점 매출도 일제히 전년 대비 1.0%, 1.6%씩 감소하며 하락세로 돌아섰다. 임진 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새로운 대출규제가 도입되면 비은행 대출 및 신용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이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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