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정부 ‘산업경쟁력 관계 장관회의’가 표류하다시피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금호타이어·성동조선 등 구조조정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새 정부 들어 첫 킥오프 회의조차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서다.
12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구조조정 장관회의는 대선 이전인 지난 4월을 마지막으로 개최가 중단됐다. 지난해 6월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사태 등을 거치며 정부 내부에 구조조정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경제부총리, 산업부·고용부·금융위 장관 등을 협의체 상임위원으로 두는 장관회의를 신설했다. 이 회의는 4월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열리며 구조조정의 사령탑 역할을 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 추가 투입 등 굵직굵직한 구조조정 대책이 이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금융위원장이 기업구조조정분과를 맡아 방향을 설정하고 산업부 장관은 산업구조조정분과를 맡아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기재부 1차관이 경쟁력강화지원분과를 맡아 실업 등 보완 방안을 마련하는 구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산업경쟁력 장관회의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 구조조정의 대원칙까지 함께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정부가 만든 체제라면 새로운 형태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작업도 없이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관련 부처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회의를 가능한 일찍 열자는 부처가 있는가 하면, 10월 추석 연휴 이후로 미루자는 부처가 있는 등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일부에서는 회의를 열어봤자 별 결과물을 기대할 수 없어 개최 시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을 하려면 감원 등의 고통을 분담하는 원칙을 합의해야 하는데 현 정부가 일자리 창출 기조를 강조하는 상황에다 노조를 자극할 수 있는 고통분담 얘기를 꺼내기 힘든 분위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식 구조조정 회의를 열어 새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이 무엇인지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줘야 하는데 누구도 나서 총대를 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한진해운 물류대란 때처럼 구조조정 적기를 놓쳐 금호타이어 등 현안기업의 위기가 더 악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근로자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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