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그룹과 합작으로 마그네틱 자석 파우더 제조업체인 일진IRM을 운영했던 중소기업 대표가 일진머티리얼즈가 사실상 회사를 인수한 뒤 자신을 해임하고 해당 설비와 인력을 일진머티리얼즈로 옮겨 버렸다며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일진그룹은 100억원을 투자했으나 사업이 부진하고 추가 증자를 거부하는 등 마찰이 생겨 대표를 내보내고 해당 사업을 일진머티리얼즈로 이관했을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은 각각 로펌 등을 정해 법률 공방을 준비하는 등 검찰 조사에 대비하며 본격 다툼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며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사건을 맡은 검찰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희토류회사 출신인 김유철 전 IRM 대표는 지난 7월19일 서울중앙지검에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 전 대표는 고소장에서 “일진그룹의 갑질로 수천 억 원 가치가 있는 기술과 회사를 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진그룹은 “우리 역시 (김 씨에게 속아) 금전적 손해를 본 상태로, 이미 (김 전 대표가 진정한 사건에 대해) 서울 서부지검이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前 IRM 대표 “회사·기술 모두 뺏겨”
합작 투자 후 공동대표서 해임
지분 넘어간 사실도 늦게 알아
서울중앙지검에 허 회장 고소
김 전 대표는 “론플랑·몰리코프·AMR 등 글로벌 희토류 기업에서 30년 넘게 몸담았다”며 “2010년 비즈맥을 창업해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2014년 7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고품질의 희토류본드 파우더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당시 개발한 희토류본드 파우더는 기존 중국산보다 10% 이상 가격이 저렴해 주요 대기업에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게 김 전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일진그룹과 손을 잡으면서 모든 게 어긋났다고 호소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허 회장이 직접 비즈맥 안성 공장을 찾아와 ‘대단한 기술이다. 일진이 투자를 할 테니 다른 곳에서 절대 투자를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면서 “허 회장이 직접 투자 약속을 하고 사업을 키우자고 제안하니 전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진그룹의 제안으로 2014년 11월 김 전 대표는 일진그룹과 손잡고 합작사인 일진IRM을 설립하게 된다. 양측은 일진그룹이 51%, 김 전 회장이 49%의 지분을 갖고 경영권은 일진그룹이 행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일진머티리얼즈는 39억원을 투자하고, 54억5,000만원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51%의 지분을 확보했다.
김 전 대표는 영업권 가치 45억원, 비즈맥의 기계와 재고 등 35억원 등 80억원의 가치로 평가받아 지분 49%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일진IRM은 비즈맥에 20억원(5년, 이자율 6%)을 빌려주는 동시에 비즈맥의 일진IRM 지분 전부에 질권을 설정했다.
그러나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양측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김 전 대표는 “유상증자 시기나 제3자 투자 방식, 영업 문제 등에서 계속 충돌했다”며 “아마도 이 시기부터 나를 회사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2015년 7월 김 전 대표는 일진IRM 공동대표에서 해임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이사회를 통해 일진IRM이 보유한 생산기계와 기술이 일진머티리얼즈에 넘어갔다. 김 전 대표의 지분 49% 역시 질권 행사를 이유로 일진머티리얼즈가 가져가 처분했다.
김 전 대표는 “지분이 넘어간 사실도 뒤늦게 알았고, 일진 측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면서 “대표이사 근무 당시 현대차 납품을 추진해 상당한 규모의 계약이 추진될 예정인데, 일진 측이 치밀한 각본에 따라 나를 쫓아내고 희토류 사업권까지 독점하려 한 것”이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일진IRM은 지난해 10월 영업 부진을 이유로 일진머티리얼즈 사업부로 편입됐고, 이 사실은 주식시장에 공시됐다. 일진머티리얼즈는 허 회장의 차남 허재명 대표가 최대주주(지분 56.36%)로 있다.
■일진 “적자 누적에 사업 정리”
100억 넘게 투자해 65억 손실
현대차 납품 등 계약은 실체 없어
서부지검 진정서도 ‘혐의 없음’
이 같은 김 전 대표의 주장에 대해 일진그룹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어이없다는 입장이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사업 설명을 하면서 2015년 8월까지 30억원의 매출이 발생하고, 2019년에는 5,000억원까지 가능하다고 자신했지만, 매출은커녕 적자가 누적되면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반박했다.
일진그룹에 따르면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IRM 설립 과정에서 자본금 5,000만원, 현금 출자 35억원, 전환사채 인수 대금 54억 5,000만원, 대여 10억원 등 총 100억원 상당을 투자했지만, 일진IRM 인수 당시 비즈맥 대여금 4억원과 대물 변제를 통한 34억 9,000만원을 포함해 38억 9,000만원만 회수했을 뿐 나머지 투자금 65억원 상당을 손해봤다는 것.
이 관계자는 “김 전 대표의 약속과 달리 회사 설립 후 적자가 심화돼 회사 경영진이 속았다고 판단을 내리게 됐다”면서 “당시 김 전 대표가 주장했던 현물자산보다는 영업력 등 무형자산을 평가했는데 결과적으로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100억원 넘게 투자했는데 남은 건 8억원짜리 고철기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 설립 당시부터 김 전 대표는 경영권 없이 2대 주주이자 기술 고문의 역할을 했고 실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된 것일 뿐”이라며 “김 전 대표가 일진으로부터 빚진 30여억원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내용 증명을 보내 부채를 갚으라고 요구했으나, 이에 불응해 결국 (김 전 대표의 일진IRM 지분 49%에 대한) 담보권을 행사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표가 검찰 고소에 앞서 진정한 사건을 맡은 서부지검은 결정문에서 “2015년 10월 23일자 질권 실행(김 전 대표 지분 49%에 대한 담보권 행사)이 계약에 따른 적법한 질권 실행이라는 피진정인들(일진)의 주장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바 있다.
이와 함께 일진그룹 측은 현대차 납품 등 향후 계약건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일진 고위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주장하는 현대차 납품 건도 현재 여러 기업들로부터 샘플을 받고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 있을 뿐 실제 계약이 성사된 것은 전혀 없다”며 “애초에 일진이 기술을 탈취할 목적이었다면 (일진그룹의) 해당 사업 담당자가 특진도 해야겠지만 오히려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 뒀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런 모든 내용을 소명했기에 서울서부지검에서도 ‘혐의 없음’으로 종결된 사건인데다 현재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측에서 고소인 참석을 요구하는데 (김 전 대표가) 세 차례나 출석에 응하지 않으며 시간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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