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이사장 선임을 둘러싼 ‘숨은그림찾기’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이 지난 27일 후보 지원을 철회한 지 하루 만에 또 다른 유력한 후보 지원자가 공개됐다. 과거 낙하산 인사로 빈축을 샀던 이사장 인사가 이번에도 정치권에 휘둘리는 모양새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거래소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28일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 김성진 전 조달청장, 김재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장이 이사장 후보로 지원했다고 추가 공개했다. 정지원 사장은 거래소 본사가 있는 부산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부를 거쳐 금융위원회 기획조정관·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성진 전 청장은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캠프에서 경제공약 마련에 참여하는 등 새 정부 출범에 힘을 보탰다는 이유로 정 사장과 함께 2파전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추천위는 예정에 없던 후보 추가 공개에 대해 “비공개 지원자에 대한 추측이 확대되고 있어 지원자들을 설득해 추가로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추천위는 앞서 26일 김광수 전 원장과 최홍식 전 코스닥시장본부장, 최방길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 류근성 전 애플투자증권 대표, 신용순 전 크레디트스위스은행 감사, 이동기 현 한국거래소 노조위원장, 유흥열 전 노조위원장이 이사장 후보로 지원하면서 지원 현황 공개에 동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26일까지만 해도 전체 지원자는 14명, 이 중 지원 현황 공개에 동의한 지원자는 7명이었다.
하지만 27일 김광수 전 원장이 급작스럽게 지원을 철회한 후 이날 정지원 사장 등이 추가로 공개에 동의했다. 여기에 당초 지원 현황 공개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철환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장도 지원을 철회하면서 결과적으로 전체 지원자는 12명, 지원 현황이 공개된 지원자는 9명이 됐다. 나머지 3명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다. 미공개 후보에는 금융감독원장 물망에 올랐던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 등이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다만 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미공개 상태인 지원자들은 업계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후보 지원 자체가 ‘정치권과의 연줄’에 따라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임명됐으나 이달 18일 1년여 만에 사퇴한 정찬우 전 이사장도 정부·금융당국의 의지에 따른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연임이 유력시됐던 최경수 전 이사장을 제치고 ‘친(親)박근혜’ 성향이 강한 정 전 이사장이 부상한 후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2013년 최경수 전 이사장이 선임되던 시기에도 관피아 논란과 함께 3개월 동안 공모가 중단된 전례도 있다. 이번에는 유력 후보였던 김광수 전 원장이 갑자기 ‘일신상의 사유’를 내세워 물러난 것도 정치권의 물밑 기 싸움 때문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 전 원장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거래소 이사장 인사의 기준이 전문성과 능력·자질보다는 정치권 인맥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추천위와 후보들 역시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 추천위는 8월28일부터 9월4일까지 이사장 후보 공모를 진행했지만 지원자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전례 없는 추가 공모를 실시했다. 이어 두 명째 후보 지원 의사를 철회하면서 후보들 간의 눈치싸움만 심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거래소의 지분을 보유한 34개 증권사·유관기관들이 주주총회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거수기 노릇에 그친다는 비판이 이어져왔다. 이와 관련해 거래소 노조 측은 “추천위 위원들이 총사퇴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천위는 사외이사 5명,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대표 각 1명, 금융투자협회 추천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추천위는 다음달 11일 서류심사와 24일 면접심사, 후보 추천을 진행할 예정이다. 추천을 받는 후보는 단 1명이다. 이어 다음달 말 열릴 주주총회에서 추천 후보에 대한 찬반 표결이 진행된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위원장은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대해 선임 1개월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역시 유명무실한 조항이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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