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전날 만화 캐릭터로 나온 곰 인형이 곳곳마다 매진이었다. 한 가게에 ‘마지막 남은 인형 1개, 경매로 판매’라는 글이 붙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동심을 노린 상술에 분노했다. 당황한 주인이 ‘마지막 남은 인형 1개, 경매로 판매. 수익금은 불우이웃 돕기에 쓰임’이라고 고쳐 달자 소비자들은 앞다퉈 경매에 응했다. 어떤 식으로든 비싸게 사야 하는 상황이지만 ‘불우이웃 돕기’라는 말에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9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탈러(72)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이처럼 사람들의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인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온 행동경제학자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Nudge)’와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명제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행동경제학을 발전시켜왔다. 1970년 대학원생이었던 탈러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익과 손실을 정확히 분석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보는 기존 주류 경제학에 의문을 품었다. 실제 생활에서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탈러는 인간을 설명하려면 반드시 심리적인 측면을 포함해야 한다고 봤고 그렇게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해왔다.
노벨위원회가 탈러 교수의 업적을 높게 산 부분도 이 대목이다. 노벨위원회는 이날 “심리학적으로 현실적인 가정들을 경제적 의사결정 분석에 결합했다”며 “경제학을 좀 더 인간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탈러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경제적 행위자가 인간이고 이를 경제 모형 구성에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단순하게 재정적 결정을 내리는지 설명하는 ‘심성회계(mental accounting)’ 이론을 개발했고 손실을 기피하는 태도를 통해 사람들이 소유하지 않을 때보다 소유하고 있을 때 같은 물건을 더 아낀다는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도 설명했다.
탈러 교수는 인지적인 제한 때문에 금융시장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연구하는 ‘행동재무학’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2009년 금융위기도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선택이 빚어냈다고 설명했다. 극도로 복잡해진 금융상품을 인간이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에 대응하는 미국 정부 역시 짧은 시간에 정확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탈러 교수의 이론과 실험도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공정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때문에 기업이 수요가 많은 시기에도 비용이 오르지 않는 한 가격을 인상하지 않는 원리를 밝혀냈다.
탈러 교수의 행동경제학 이론은 실생활에도 널리 응용된다. 가장 활발한 분야는 마케팅으로 그릇을 크게 만들어 평소보다 많이 음식을 먹게 만드는 수법이나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특정 식품을 재배열해 판매 증가를 가져오는 전략처럼 인간의 허점을 간파해 의도하는 행동을 이끄는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분배자가 정해진 자원의 분배량을 결정해 일방적으로 분배하는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을 고안하기도 했는데 이는 세계 각지에서 공정성에 대한 여러 집단의 태도를 측정하는 연구에 많이 활용됐다. 탈러 교수는 사람들이 새해 다짐을 잘 지키지 못하는 점에 대한 연구에도 족적을 남겼다.
탈러 교수는 1945년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 오렌지에서 태어났다. 1974년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뒤 코넬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영대학원을 거쳐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ㆍ행동과학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노벨경제학상을 최다 수상한 미국은 지난해까지 3년간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다 4년 만에 수상자를 배출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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